‘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며 우리 존재의 층위를 두드려왔다. 한국에서 자생한 문화적 창조물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혼종적 정체성이 인정받고 있는 시대에, 이 오래된 질문은 어째서 여전히 유효한가? 한국성을 규정하기 위해 우리는 전통과 역사를 어떠한 시선으로 마주해야 하는가?
초연결 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정체성에 관한 사유는 단순한 논리적 분석이나 양식의 비교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렵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경계 너머 더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근대적 합리성과 이성 중심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며, 물·불·공기·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를 근간으로 한 질료적 몽상과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했다. 자연을 이루는 기본 단위들이야말로 관념 이전의 사유를 여는 통로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질료적 상상력의 관점에서 한국성에 대한 탐구를 ‘흙’이라는 물질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흙은 인류 보편의 기억이 퇴적된 물질이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품으며 순환하는 자연의 심장 박동을 간직하고 있다. 작은 입자에 불과하지만, 뭉쳐지면 기물이 되고, 쌓이면 건축이 되어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했다. 불을 견디며 단단해지고, 물과 만나면 흩어져 새롭게 태어나는 유연성을 지니지만, 때로는 침묵 속에 머무르기도 한다. 흔적과 공백, 정주와 유랑을 담아내는 흙은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론적 상징으로 동서양 문화권을 가로질러 나타난다. 『주역』(周易) 64괘 중 두 번째인 ‘곤괘(坤卦)’는 땅의 기운으로, 흙이 지닌 수용과 포용의 정신이 진리로 향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여러 기독교 성서에서 인간을 흙으로 비유하여 이를 존재의 기원과 귀환으로 은유해 왔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도자기에서 출발한다. 불의 시간을 통과하여 시대의 사상을 담아낸 도자 속 흙의 정신은 김환기(1913-1974)와 송현숙(1952-)이 피워낸 근대의 상실과 아픔을 극복하려는 창조적 에너지로 연결된다. 이어서 박영하(1954-)와 이진용(1961-)은 고대·고전의 물질과 조우하며 이룬 정신적 고양을 오늘의 공간에 불러낸다. 박광수(1984-)와 로와정(1981-)은 대지의 휴식과 해체성을 담아내고, 지근욱(1985-)은 중력에서 풀려난 입자가 빛으로 환원되는 연금술적 순간을 포착한다. 이 모든 실천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뿌리에는 ‘근원’으로 돌아가 세상을 새롭게 빚어내려는 의지가 자리한다. 여기서 흙의 입자들은 세상을 이루는 가장 미세하고 본질적인 빛의 씨앗으로 변모한다.
흙은 우리가 함께 딛고 선 ‘지구’라는 공동의 조건이기도 하다. 흙으로부터 본질로 돌아가 보려는 이 시도는,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예술이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우리 안에 잔존하는 흙의 감각을 불러내어, 오늘의 정체성과 미학, 그리고 세계 감수성과의 연결 지점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흩어지고 바스라지며 단단해지는: 흙으로부터」 中 발췌 ㅣ 신리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