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헤윰은 운동하고 유동하는 형상을 정지된 화면 위에 담아내려는 시도를 거듭해 왔다. 회화의 본질적 딜레마를 회화를 통해 시각화하겠다는 역설이다. 배헤윰의 회화는 대상의 외형을 닮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구체화하는 생각의 운동성을 구현하는 데 목적을 둔다. 사유의 진전을 드러내는 회화는 신체의 운동을 통해 화면 위에 현현한다. 배헤윰은 화면에서 구조적 결합 상태에 놓이는 색면끼리의 갈등이나 화합이 회화 특유의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가정한다. 움직이고자 하는 순간의 색면들과 불가능한 것을 담으려는 붓질의 진동이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것 너머의 장면을 추정할 수 있게끔 한다. 앞으로 일어날 운동에 대한 암시를 심어 둠으로써 사유의 진행을 유도하는 효과를 거둔다.
초기 작업에서 구체적인 유기체의 형태를 드러냈던 데 비해 근작에서는 소재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점이 눈에 띈다. 배헤윰은 비구상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구조와 결합 양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근작 〈클라비에〉(2018)는 건반 악기 위에서 벌어지는 음의 구조적 운동을 표현한 작품이다. 최소단위로서의 음들은 음악으로 연주할 때 일시적으로 개별성을 잃는 한편, 전체 음악을 구현하는 요소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다. 같은 맥락에서, 〈클라비에〉(2018) 화면 속 색면들은 이전 작업에서 보인 개별적 형상에서 벗어나 화면 위 유동하는 곡선의 전체적 움직임에 녹아든 듯 보인다. 소재는 추상화하였으나 화면 구성이 보다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배헤윰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에 이화여자대학교 회화·판화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5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의 드로잉·회화 전공 디플롬 과정을 졸업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독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대학교 실습 기반 연구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OCI미술관(서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서울), 소피스트리(뉴욕)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퀸즈미술관(뉴욕), 하이트컬렉션(서울),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서울), 쿤스트페어라인 포이어바흐(슈투트가르트, 독일)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