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9(Wed) - 09.13(Wed)
Hakgojae Gallery Space 2
선들이 자아내는 환영이 단단하게 여울진다. 지극히 하드보일드한 외양 뒤에 더없이 감정적인 바람을 숨긴 것처럼. 스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얼어붙지 않을 만큼 유연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바람을 생각한다. 다부진 듯 온유한 선, 무정한 듯 세심한 그리기의 시간이 화면에 나란히 축적된다. 엷은 안개를 고운 빗으로 쓰다듬듯이, 그로써 빛을 머금은 공기의 색채를 떠 올리듯이.
몸을 숙여 수평면 위에서 그린 그림은 줄곧 수직 벽면에 오를 내일을 의식한다. 스스로의 내면세계에 응집된 시선을 외부 세상을 대하는 방향으로 일으키는 일이다. 회화의 몸은 그것을 바라보는 몸과 고유하고 내밀하게 관계 맺는다. 지난한 회화의 여정 속에서 선분에 눌러 담은 감정의 색채를 유심히 본다. 올곧은 몸짓이 긋고 간 자리에 남은 색연필 가루의 온난함을, 손으로 그린 회화의 끈기 어린 시간을. 단단하게 여울지는 선분의 세상, 그곳의 울림에 문득 귀 기울인다. 마음은 때로 일렁이고, 때로 가라앉는다.
「하드보일드 브리즈: 단단하게 여울지는」 中 발췌
박미란 | 큐레이터
이번 전시에서 그의 가상은 시각적이라기보다 신체적인 것, 혹은 정동적인 것이 됐다. [...]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우리 자신의 신체가 그림의 파동적 장에 직접 영향을 받는 것처럼 느끼고, 동시에 어떤 공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 그 가상은 그래서 신체적 가상이다. 제한적 눈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관여하고, 몸으로 체험되는 가상이다. 우리는 그림 앞에서 마치 바다에 뛰어들 듯, 반대로 말해 바다가 우리를 감싸 안듯 그림의 출렁거림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렇게 파동과 공명하는 순간 그림과 우리와의 경계는 사라지고, 나와 그림에서 안-사이(in-between)가 발생하며, 곧 정동을 활성화한다. 그의 작업이 언제나 반복의 수행성과 분리되지 않는 덕에, 거기엔 항상 그가 있었다. 반복의 리듬은 그의 눈과 신체의 운동 범위 안에서 그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리듬에서 출현한다. 그는 자신의 리듬을 그림에 체화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관객마저 하나의 전일적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의 작업은 그의 신체적 수행에서 시작되어 관객이 작품과 공명하면서 완성된다.
「시각적 환영에서 신체적 가상으로」 中 발췌
조경진 |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