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이 인물 그림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시대별 대표작을 망라한다. 일종의 ‘인물화 회고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인물 이외에도 여러 부류의 모티프를 다루고 있다. 첫째는 꽃, 풀, 나무, 과일, 채소 같은 자연 소재다. 둘째는 자동차, 배, 자전거, 선풍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나 모자, 넥타이, 안경, 단추, 장난감, 우산 같은 소소한 생활소품이나 액세서리다. 셋째는 아라비아 숫자, 원이나 사각, 소용돌이 같은 추상적인 형상이다.
오세열은 이 다채로운 세상사의 모티프를 거의 무작위로 낙서하듯 화면에 펼쳐놓는다. 여기에다 작가가 화면 바탕(지지체)에 치밀하게 일구어놓은 물감층에서 미묘한 마티에르의 잔치가 펼쳐진다. 사물의 본래 크기는 서로 어긋나 있으며, 따라서 원근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무구(無垢, innocent)의 시선’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공과 추상적 형상의 모티프가 각각 독자적인 등가(等價)의 기호처럼 화면에 자리를 틀고 있다. 결국, 모티프 제 각각이 화면의 주인공이어서, 이 주인공들끼리 동시다발로 연쇄적인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낸다. 바로 이 이야기 저장고로의 여행 혹은 ‘기억의 자적(自適)’이 오세열 그림의 핵심이다.
「‘무구’한 눈」 발췌
김복기 l 아트인컬처 대표.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