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 선생의 다섯 번째 개인전을 아트스페이스 서울과 학고재에서 갖는다. 선생은 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보여왔다. 또한 ‘키치미술’을 한국 화단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선생은 이발소그림이 지닌 키취적 속성을 반어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였다. 선생의 작업은 1986년 개인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민정기 선생의 두 번째 개인전이기도 했던 이 전시 이후 선생은 경기도 양평에 작업 터전을 마련한다. 이 곳에서 칩거하면서 선생은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필치로 진경산수의 정신을 이은 ‘풍경’ 또는 ‘산수’ 작업들을 해왔다. 이번 전시도 소략하고 단순한 형상으로 우리 산하와 그 안의 작은 생명체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86년 이후의 작품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에는 산과 계곡, 시내, 화초와 들꽃을 그린 근작 38점을 출품했다. 민정기 선생의 작업들은 자연을 단지 인물에 부수되는 것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풍경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풍경화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접근하는 선생의 방법은 충실한 객관적 묘사를 특색으로 한다거나 자연을 극적으로 표현한 서구적 의미의 풍경화와는 변별점을 지니고 있다. 민정기 선생의 풍경화는 주역, 풍수지리, 민화, 선화 등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선생은 전통 동양화의 준법들을 유화물감과 유화붓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선생은 화면의 평면성과 수직성, 즉 정면성을 강조하기도 하며 다양한 정경들을 시점의 변화에 따라 펼쳐놓는 일종의 초월적 시점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초월적 시점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시선의 기본적 방향을 유지하는 산수화의 구성법을 따르고 있다. 이번에 출품되는 〈벽계구곡〉을 보면, 지도를 펼쳐놓고 읽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의 방향이 설정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산수에 이어 작은 세계의 아름다움과 조화에도 작가 자신이 무척 세심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갓 피어나려는 작약 한 줄기, 채송화 과꽃, 백일홍 등 화초들과 들꽃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것들 중에 <뚝버들〉, 〈며느리주머니〉, 〈노인장대〉, 〈달개비〉등은 이름조차 생소한 들꽃들입니다. 선생은 이 작고 수수한 생명체들에서 우주 질서의 힘을 읽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유유히 거닐며 산수를 보고, 구석에 핀 조그만 들꽃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그런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