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월전미술상 수상기념전 이후 세 번째 개인전을 여는 한국화가 김보희는 일상의 단면이나 자연풍경을 소박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줄곧 자연과 생활주변을 채색화로 표현해온 김보희는 근래 들어 자연에로 압축되어 지면서 색을 절제하는 가운데, 구성과 표현의 함축미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일상과 생활주변도 자연임에는 틀림없으나 가능한한 인위적인 것이 배제된 것이야말로 순수한 의미의 자연이라 할 수 있기에 그녀의 화면에 보이는 자연은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과 일체화된다는 동양적 자연사상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자연에 임하는 그녀의 태도는 꾸준하면서도 전진적인 모색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전 작품에 비해 설명이 줄어들고, 담담하게 자연을 드러내려는 태도는 그 나름의 심미적 탐구의 깊이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을 두고 스스로 채색화가 아니라 색채가 있는 풍경화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림에 그려진 풍경들은 빼어난 절경이라기보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정경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 편안하게 다가가게 되는 것도 이러한 소재상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소재를 과장없이 충실하게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마음에 비추어진 모습으로 표현하여 화면에 잔잔한 詩情이 감돌게 한다. 대상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그림에서 구도, 기법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양수리, 충주호반, 제주도 등지의 모습을 표현한 전체로서의 풍경이자 부분으로 나타나는 풍경은 검은 덩어리로만 나타나는 섬과 섬을 에워싸고 있는 바다의 잔잔한 수면, 갈대숲이 있는 강변 등으로 무엇하나 특별한 시각적 긴장을 유도하는 것이라곤 없다. 그러면서도 이들 풍경은 볼수록 푸근함을 더해 준다. 이점은 그녀의 화면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으로 단순히 있는 풍경이 아니라 생각케하는 풍경으로서의 우리의 명상을 유도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속의 인위적인 장치를 최대한 배제한 가운데 수평선 위주로 구성된 섬의 단면과 바다의 잔잔한 물결, 넓은 여백 등은 화면에 적막감을 조성하며 끝없는 고요속에 함몰되어 자신도 모르게 현실이 아닌 또 하나의 세계로 이끌려감을 깨닫게 한다. 또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생활 언저리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미묘하게 공존하는 화면 분위기는 김보희의 독자적인 농담구사에 있다고 하겠다. 채색이 배제된 가운데 안으로 스며들듯이 중첩된 먹색은 화면 전체에 은은하게 퍼지면서 자연의 푸근함에 빨려들게 하는 시각적 효과를 낸다. 이렇듯 김보희가 보여주는 화면은 그 자신의 소박하고 맑은 심성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것으로, 그녀의 작품이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을 줄지는 몰라도 현대인에게는 잠시나마 시끄러운 일상을 떠나 자연의 정적 속에 묻히는 그런 평온함을 보여준다. 정적인 가운데 소박한 마음이 배어 나오는 그의 작품세계가 담백한 먹색과 손맛으로 한결 무르익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