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 《정종미》전은 “제13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정종미 선생의 수상기념전이다. 정종미 선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뉴욕 파슨스 스쿨과 디외 도네 페이퍼메이킹 스튜디오에서 수학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재료와 작업 과정을 중시하는 정종미 선생의 작업 방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정종미 선생은 과거에 한국의 벽화와 불화, 민화에 나타난 조형 언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선보였고, 콩즙과 들기름을 주재료로 한 독특한 채색 기법으로 〈현〉시리즈, 〈매〉 시리즈 등 현대적 산수를 시도했으며, 한지를 새롭게 해석한 〈종이 부인〉시리즈로 새로운 한국화의 영역을 개척했다. 한국화의 전통 재료 연구에 천착해 온 정종미 선생의 관심은 표현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전통 안료의 종류와 성질, 먹과 접착제, 장지 채색 기법 등을 자세히 수록한 전문해설서『우리 그림의 색과 칠』의 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제13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은 그동안 정종미 선생이 보여 온 기존의 작업을 확대, 심화한 전시이다. 무엇보다 선생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는 작업 과정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선생의 작업은 종이를 염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목에 물을 붓고 끓여 나온 액을 종이에 붓으로 발라 염색을 한다. 그 뒤에 아교를 바르는데, 아교는 물에 부어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불린 후 70~80℃에서 용해한 것을 사용한다. 이 아교물(교수)에 백반 용해액을 넣어 종이에 바른다. 그리고 종이를 건조한 뒤 홍두깨를 말아 힘껏 두들긴다. 이렇게 종이가 준비되면 이제 물감을 만든다. 천연 안료를 유리판에 올려놓고 아교 농액을 떨어뜨려 완전히 가루로 만든 후에 준비된 아교물(교수)을 붓고 채색을 한다. 채색이 완료되면 콩즙을 바르는데, 콩즙은 천연 방수제의 역할을 한다. 이 위에 염색한 천을 콜라주 한다. 이때 접착제 역시 밀가루를 6개월에 걸쳐 삭혀 전분으로 만든 뒤 제작된 풀이다. 이 지난한 과정 모두가 철저히 작가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어부사시사〉, 〈소쇄원〉 등의 60 여 점은 우리 산천에서 얻은 감흥과 고전 시가에서 얻은 시흥을 특유의 작업 공정으로 만든 결과물들이다. 이번 전시 《정종미》전은 손으로 일구어 예술로 성취한 정종미 선생의 예술 세계를 깊게 호흡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