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희 선생은 예술에 대한 정직성과 자기 확신을 작품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 보이려 노력해온 작가이다. 그는 매체나 조형사조를 떠나 어떤 형식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화로 자신과 이웃들의 일상적 삶과 서정을 그려왔다. 심현희 선생 작업의 출발점은 이렇듯 ‘나는 나다’라는 의식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심현희 선생은 꽃을 통해 삶의 진실에 접근해보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꽃을 통해 시간을 보고, 그 시간의 운명 아래 있는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 이번 전시에 보여지는 심현희 선생의 꽃들은 대체로 크다. 그런 까닭에 기왕의 꽃 정물화들과는 달리 큰 화폭에 그려진 경우가 많고 대범하고 시원시원하며 밝고 환하며 기운차다. 이런 느낌이 부각된 데는 시원시원한 붓질과 거침없는 나이프의 사용이 한몫 했다. 작가는 순간의 흐름 속에서 꽃을 보고 순간의 흐름 속에서 꽃을 그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꽃이 자신에게 하나의 충만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꽃을 그린다고 한다. 즉 그는 그저 꽃이 아니라 어느 순간의 꽃, 그 순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꽃, 바로 그런 꽃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순간의 꽃을 포획하려는 노력으로부터 화가는 결국 자신이 시간과 싸우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또한 심현희 선생은 꽃을 그리는 일을 통해 현실과 지금 당당히 맞서고 있으며 그만큼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앞에서 와서 뒤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간이란 나와 더불어 생겨나서 나와 더불어 사라지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탄생과 죽음이 곧 시간의 시작과 종말이라면 그것은 꽃의 피어남과 사라짐과 같다. 우리가 꽃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그것의 형태나 색채 때문이기도 하지만, 꽃들이 우리처럼 자신의 탄생과 사라짐을 통해 시간을 탄생시켰다가 종식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심현희 선생의 꽃은 찰나의 꽃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영원의 꽃이기도 한 그런 꽃들이다. 원효는 해골을 보았고 그 해골에서 꽃을 보았다. 심현희 선생은 어쩌면 꽃에서 해골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꽃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자화상들은 자신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하며 그 질문들로부터 꽃을 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우리를 삶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잠들었던 질문들이 하나, 둘 시나브로 깨어나는 질문의 꽃밭으로 초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