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소나무를 통해 우리 고유의 기개와 절개, 에너지와 리듬을 집요하게 추구해 온 김경인의 일곱 번째 개인전이다. 김경인은 1970년대부터 현실비판적인 시각을 대범하게 표출한 <문맹자> 시리즈로, 1990년대 들어서는 민족정서 짙은 소나무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며, 그 예술적 성취로 1995년에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경인의 화력 전반기라 할 수 있는 시기는 유신으로 대변되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당시 미술계는 국전 중심의 보수적인 아카데미즘과 획일화된 미니멀리즘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식으로는 독재의 억압과 실존적 고통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 김경인은 <문맹자> 시리즈를 통해 사회비판과 심리표출이 어우러진 개성있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1974년부터 81년까지 지속된 제3그룹전에 출품되었고, 이들 작품은 후에 민중미술이라 불려진 1980년대의 커다란 미술운동의 선구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시대상과 삶의 표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김경인은 민주화 이후 개인주의와 물신화의 파고가 높아지자 우리 고유의 기개와 절개, 공동체의식을 소나무를 통해 찬미하기 시작한다. 소나무는 문인화에서 선비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고, 민화와 십장생도에서는 장수의 은유였다. 김경인의 소나무 그림에는 이러한 전통의 상징뿐 아니라 우리 민족 고유의 기운과 흥취가 담겨있다. 10년 넘게 소나무를 찾아 전국 구석구석을 돌며 소나무에 매달린 김경인은 다소 거칠지만 대상의 본질을 직설적으로 포획해내는 특유의 조형비법으로 소나무의 형상에‘우리 것’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김경인은 소나무 고유의 멋과 휘영청한 기승전결의 묘, 기의 운행, 용트림의 조형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곧잘 이것을 우리 고유의 춤사위와 연결시키곤 하는데, <춤사위>에서는 춤추는 사람을 슬쩍 소나무에 갖다 대 소나무 형상이 얼마나 춤사위 동작과 닮았는지 보여준다. <회목마을송>에서는 시골 할머니들의 해학적인 어깨춤이 절로 생각나고, <나정노송>에서는 한 팔 앞으로 쭉 뻗은 승무의 아름다운 선이 홀연히 떠오른다. <돌산 앞 소낭구>에서는 상모놀이를 하며 흥겹게 회전하는 농악대의 빠르고 힘찬 동작이 불현듯 살아 오fms다. 그 흥취와 정감에 빠져 있노라면 김경인이 그린 것은 단순한 소나무의 형상이 아니라, 그 기와 운, 나아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 땅, 이 백성의 에너지와 리듬임을 알 수 있다. 김경인은 이번 전시에 소나무 그림 뿐 아니라 추상적인 형태로, 혹은 드로잉의 형태로 사람을 그린 그림 몇 점도 함께 출품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소나무의 형상에 몰입해 왔지만 이제는 소나무가 서있는 주위와 조건까지 담고 싶다는 작가의 말은 아마도 그가 종국적으로 돌아갈 형상이 사람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소나무에 매달린 솔방울을 작가 지인들의 얼굴로 표현한 <소낭구 사람들>처럼 그의 화력의 대미를 장식할 종국의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속에 소나무 한 그루씩을 키우는 소나무의 사람들일 것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의 캔버스에서 용솟음치듯 꿈틀거리는 소나무 근작들과 새롭게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인물화가 한 자리에 망라되는 이번 전시는 변모된 김경인의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새로운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