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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S
Hakgojae Gallery
봄의 소리
이번 전시는 서양화가 정경자 선생이 10년 만에 갖는 개인전《봄의 소리》입니다. 정경자 선생은 1939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지만, 화가로서의 삶은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작업한 30년을 통해 만개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선생은 우리 화단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봄의 소리》는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 정경자 선생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모든 예술은 예술가의 자기 고백적 산물이고 어떻게든 작가의 삶을 반추합니다. 정경자 선생의 행복했던 유년시절은 6.25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거치면서 산산이 부서졌고, 그 아픔은 초기의 인형그림에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나타납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인형들은 한결같이 복잡한 창살이나 견고한 성벽에 갇혀 있습니다(그림1). 무표정한 인형의 얼굴은 초현실적이면서 우울하고 섬뜩한 느낌으로 어린 나이에 겪었던 선생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치유할 수 없는 유년기의 상처와 한국과 일본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던 정체성의 고민, 그로부터 선생이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느낀 건 화가의 꿈을 안고 간 파리에서입니다.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선생은 경제적, 정신적 안정을 찾으면서 밝고 과감한 색채로 환상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신구상 시대를 열어갑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몽마르트의 봄>, <골목에서>는 멀리 사크르 쾨흐(Sacre-Coeur) 성당이 보이는 파리의 거리 풍경을 갖가지 원색으로 청명하게 우려내 인생의 아름다운 한 때를 낭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선생은 조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양평에 안착합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함께 하면서 선생의 귀국과 정착을 도운 초등학교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 이흥록 변호사가 있습니다. 정경자 선생은 양평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전시관과 아틀리에를 짓고 자연에 심취합니다. 오랜 외국생활동안 잊고 지내던 조국의 풀 한포기, 바람 한 점에 한없이 기뻐하는 일상은 자연에 뿌리내린 내면화된 추상의 세계를 끌어냅니다. 파리시절의 자유분방한 원색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로 변모하였고, 도시감각의 경쾌한 선들은 점차 사라져 자연의 색채추상에 녹아들었습니다. 색면과 색면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순연>은 자연의 어느 극적인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빛나는 순간이 포함하고 있는 다종다양한 감정을 오직 색의 농담을 통해서 펼쳐낸 작품입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봄의 소리>에는 자연의 느린 변화와 마음만 바쁜 기다림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겨울과 봄, 아직 얼어있는 것과 풀리는 것, 가만히 있는 것과 움직이는 것, 낮과 저녁 사이를 미묘하게 넘나드는 핑크와 그린의 색면 배치는 이렇듯 화면에서 봄의 소리를 끌어냅니다. 정경자 선생의 순수하고 조화로운 색감은 드라마 <겨울 연가>의 윤석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영상에서 색채의 정서와 리듬에 주목한 윤석호 감독은 연출하는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정경자 선생의 작품을 활용해 왔습니다. 특히 색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형상화한 미니시리즈 <컬러>(KBS, 1996)에서는 정경자 선생의 동명의 시리즈 8작품을 타이틀 그림이자 드라마 전개의 주요한 모티프로 사용했습니다. 아시아에 한류열풍을 일으킨 감독의 시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의 바탕에는 정경자 선생으로부터 영향 받은 색채감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파리시절의 낭만적인 그림들과 드라마 <컬러>를 위해 제작된 연작, 그리고 자연에 몰두한 양평시대의 근작들이 고루 출품됩니다. 이들 유화와 함께 정경자 선생의 특유의 판화, 수채화가 곁들여집니다. 선생의 수채화는 물과 식물성 안료의 성질을 최대한 활용한 경쾌하고 담백하면서 밝고 행복한 느낌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눈부신 봄날이 유난히 기다려지는 요즘, 정경자 선생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DATE
    2005.03.16 - 2005.03.29
  • ARTIST
Ar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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