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철주 선생은 한국화에 있어서 전통의 계승과 그 현대적 변용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작가입니다. 이 과제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탐구는 화포에 안료가 스미고 번져 만들어낸 아련하고 서정적인 특유의 양식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화의 스밈과 번짐 효과를 서양화 재료로 표현해낸 선생의 그림들은 한국 전통의 미감을 현대적 시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꿈을 그리다》는 설명과 묘사 대신‘비움과 남김’으로 독특한 미학세계를 구축해온 선생의 근작을 모은 자리입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생활일기>란 제목이지만 주제면에서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우선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식물의 이미지를 실루엣으로 표현한 <신장개업>, <흔들림>, <비 갠 오후> 등이 그것입니다. 다음으로 기존의 작업 주제를 심화하고 확대하여 현대 산수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신몽유도원도> 연작,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 도자의 은은한 미감을 표현한 <달항아리> 연작이 있습니다. 달빛을 받아 창호에 비친 듯 흐릿한 식물형상을 담은 식물 시리즈는 선생 특유의 기법을 완성한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신장개업> 연작은 흑백의 모노톤을 바탕으로 스미고 배어 나온 원색의 색채감이 불분명한 형태 속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신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석철주 선생이 마음속 풍경으로 소화해 재창조한 작품입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몽환적이고 아득한 산세는 서양화와 한국화, 산수와 풍경, 그리고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선생이 그리고자 한 산수는 눈에 보이는 산수가 아니라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산봉우리와 골짜기, 기암괴석과 산천초목인 ‘흉중구학(胸中邱壑)’입니다. 석철주 선생의 관심은 실재하는 풍경을 묘사하는데 있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에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보여주기 보다는 흐릿하게 여운을 남겨둠으로써 작품을 완성시키는 작가의 스타일을 반영한 것입니다. <신몽유도원도>는 문인화 전통의 사의적(寫意的) 산수를 석철주 특유의 형식미에 담아낸 참신한 시도라 할 만합니다. 질박한 장독을 표현한 <옹기> 시리즈로 이미 한국 전통도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선생은 이번 전시에서 조선시대 달항아리의 기형을 그대로 따 그 안에 특유의 아득한 산수를 펼쳐놓았습니다. 마치 순백색의 기면위에 코발트색의 산수문양을 넣은 청화백자처럼 화면에는 맑고 담백한 기품이 넘칩니다. 어렴풋한 흔들림으로 다가오는 식물 시리즈와 풍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신몽유도원도> 연작, 그리고 선인들의 체취를 담은 <달항아리> 연작이 고루 망라되는 이번 전시는 변모된 선생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새로운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