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보희는 절제된 색과 구성으로 사색적인 풍경을 선보여 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이 처음부터 깊고 조용한 울림을 주는 풍경 위주는 아니었습니다. 초기 작가의 작업은 줄곧 일상의 단면이나 자연 풍경을 채색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김보희 작업은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소재를 자연으로, 표현을 간결함으로 압축했습니다. 이번 전시 은 소재와 표현에 있어 자연의 간결한 표현이라는 기존의 작업 경향을 연장하고 심화합니다. 조용한 섬을 둘러싼 잔잔한 바다, 고즈넉한 물과 맞닿은 차분한 하늘 등은 양수리 충주호반 제주도 등 과거에 작가가 선보였던 평온한 풍경과 일맥상통하는 점입니다. 한편 작업 소재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마음으로 느끼는 김보희 특유의 시각과 내면이 한층 깊고 넓은 사색의 공간으로 깊어졌습니다. 김보희는 이번 전시에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들의 관계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는 동시에 작가의 내면을 통해 바라본 자연 즉 눈에 보이는 풍경과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을 한번에 아우르는 것으로 작업의 지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작품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것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서 발견한 새로운 공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모든 경계를 초월해 조화롭게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또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이전의 절제된 색의 작업에 채색이 더해진 모습입니다. 회색의 바다는 옥색으로 펼쳐지고, 하얀 하늘은 쪽빛으로 물들었으며, 검은 산에는 푸릇푸릇 풀이 자라났습니다. 그럼에도 화면에 스며들 듯 반복하여 사용한 세필이 만들어 낸 은근함이 차분한 채색과 어우러져 몰입을 청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정제된 색채의 풍경과 세밀하고도 대담한 묘사가 돋보이는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모두 20 여 점 출품됩니다. 이번 전시 이 자연과 자연, 사물과 사물, 존재와 존재 그 사이에 숨어있는 조화롭고 이상적인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