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펜화전 조용헌(동양학자. 칼럼니스트) 펜(pen)은 서양을 대표하는 필기구이고, 붓(筆)은 동양을 대표하는 필기구이다. 펜은 처음에 갈대나 거위깃털로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갈대나 거위깃털의 뾰쪽하고 딱딱한 성질을 이용하였다. 그 재료가 쇠로 바뀌어서 만년필과 같은 철필(鐵筆)이 등장하였고 연필(鉛筆)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동양의 붓은 동식물의 털(毛)을 주재료로 이용하였다. 펜화를 그리는 김영택 선생의 평소 주장에 의하면 붓과 펜은 동서양 문명의 전개양상을 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펜은 뾰쪽하고 딱딱해서 가늘고 길게 그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펜은 정밀한 건축이나 기계의 설계도면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붓은 부드럽고 뭉특해서 정밀한 설계도면을 그릴 수 없다. 정밀한 설계도면을 그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엄청난 차이를 유발한다. 설계도면이 남아 있으면 후세 사람이 그 도면만을 보고서도 복제(複製)가 가능하다. 그 건물을 만들었던 장인(匠人)이 죽더라도, 도면만 남아 있으면 후세 사람이 그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면이 남아 있지 않으면 그 기술을 계승받은 제자가 남아 있어야 하고, 만약 전승자가 대를 잇지 못하면 그 기술은 실전(失傳)되고 만다. 조선은 설계도가 없었다. 물론 대략적인 그림은 있었지만, 정면, 측면, 평면도와 같은 정밀한 설계도는 남기지 못하였다. 붓과 설계도는 궁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붓은 서예나 산수화의 경우처럼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장점이 있다. 펜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김영택(金榮澤) 화백. 대략 50만 번의 손질이 간다는 그의 ‘펜화’를 보고 있노라면 펜이 지닌 정밀성과 그림이 지니는 깊이가 모두 느껴진다. 정밀성과 깊이가 합해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가. 그것은 품격이다. 선생의 펜화는 동양의 선비들이 추구하던 그윽한 품격을 보여준다. 그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전통 문화재이다. 봉암사 일주문, 합천의 영암사지, 청송의 방호정, 미황사 대웅전, 서울의 숙정문 등등의 그림은 펜화가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그 어떤 그윽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선생이 즐겨 다루는 이러한 문화재의 배경은 한국의 명당(明堂)중에서도 명당에 해당하는 영지(靈地)에 해당한다. 이들 영지들은 3가지 조건을 갖춘 곳들이다. 바위, 물, 소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바위가 뭉친 곳에서는 강력한 지기가 있음을 뜻한다. 영성(靈性)을 계발하려면 일단 바위가 있어야 한다. 바위가 없으면 기가 약하다. 그리고 물이 감싸야 한다. 바위의 불을 물이 감싸 안아 준다. 물이 있어야 그 터의 기운이 저장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소나무이다. 하늘의 물과 땅의 불, 그리고 나무는 천.지.인 삼재(三才)를 상징한다. 그래서 나무가 있어야 하고, 나무의 귀족인 소나무가 적격이다. 이 3가지 요소가 어우러지면서 품어내는 그윽함과 품격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선생의 펜화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펜은 비록 서양에서 시작하였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전통문화가 지닌 영기(靈氣)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될 줄은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선생은 새로운 문파를 개척한 장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