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4명의 작가들은 한국의 이재선과 정진용, 그리고 중국의 왕펑화(王風華)와 숑위(熊宇)이다. 이재선과 정진용은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화면을 구축하는 경향이 있지만 왕펑화와 숑위의 작업은 순수 페인팅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들 4명은 모두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30대 작가들로 한국과 중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 특히 인간의 창조 활동 가운데 예술적 능력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독립된 가치이며 철학이다. J. W. 스틸에 의하면 인간의 창조력은 30세에서 55세까지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창조적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른 이들 4명의 작가들은 작품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다양한 실험을 통한 그들만의 언어를 창작해냈다. 이번 전시의 제목 <휴먼 어빌리티>는 이들 4명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해 지어졌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한ㆍ중 양국 사이의 평면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4명의 작가들의 탄탄한 회화 실력은 충분히 돋보인다. 한국의 이재선과 정진용은 동양화과 출신임에도 그들의 작업에서는 전통적 동양화의 표현을 찾아 볼 수 없다. 건축도료를 사용해 균열된 벽화효과를 낸 이재선이나 수묵위에 유리구슬을 발라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낸 정진용은 오브제의 다양한 활용을 통해 그들만의 회화를 완성하였다. 중국의 왕펑화와 숑위는 중국 현대미술의 4세대 작가들이다. 이들은 중국 현대미술의 특징적 소재인 정치적 팝과 사회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개인적 삶의 주제와 철학을 다루고 있다. 왕펑화는 거대화된 도시에서 소외된 개인을, 숑위는 기괴한 인물상에서 분열된 자아를 표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ㆍ중의 각각 다른 문화권에서 이루어진 같은 주제의 서로 다른 표현을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왕펑화와 정진용은 도시와 건축적 요소를 모티브로 작업하였다. 그리드(grid)의 표현으로 이루어낸 화면은 개인적인 기억의 분석을 통하여 복잡한 현대 사회의 모순적 구조와 네트워크 시대의 그물망을 상징하고 있다. 이재선과 숑위의 작품은 모두 몽환적 세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꿈이나 광기의 상태에서는 정신의 조정 기능이 이완된 무의식에 이르러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들의 그림은 일상의 합리와 비합리를 모순 없이 통합해내는 절대적 내면세계에서 본질을 포착해 표현한 것이다. 이들 작가들은 인간의 오랜 철학적 주제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 민감하게 감지하여 화면 위에 새로운 리얼리티로 구성해냄으로써 인간 생활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형상화 하였다. 작가들의 다채롭고 참신한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이번 <휴먼 어빌리티>전을 통해 4명 작가들의 진지한 고민의 과정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추진력이 이를 통해 확인되기를 바란다. 그 동안 한국에서 중국 작가의 전시가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졌던 데에서 한걸음 나아가, 본 전시를 계기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에서 양국 작가들의 활발한 전시가 이루어져 이들 작가들에게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이 펼쳐질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