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선 매․란․국․죽》은 2006년 출간된 『문봉선의 사군자 다시 보기 새로 그린 매란국죽 1.2』(도서출판 학고재)에 실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이번에 학고재 전관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지난 15년 동안 문봉선 선생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생한 것들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한국인에게 사군자만큼 친근한 화목(畵目)은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정성스럽게 난을 치기도 하고, 집집마다 사군자 그림이 걸려 있기도 합니다. 비록 현대인의 삶은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난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가을이면 국화의 은은한 향기를 동경합니다. 이렇듯 사군자가 우리 삶 속에 밀접하게 들어와 사랑 받는 이유는 그 속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눈 속에 핀 매화, 선비처럼 고결한 난초, 가을 찬 이슬 속에서도 붉은 빛을 더하는 국화, 바람에 휘어져도 부러지지는 않는 풍죽에 담긴 정절, 절개, 극기의 정신은 자연 속에서 소신 있게 살고자 한 동양인 그리고 한국인의 심성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 네 가지 화목을 즐겨 그리며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흠모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고 따르고자 하였으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 뜻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군자는 기법에 매몰된 진부하고 고루한 화목 정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동양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사군자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나 창작을 하기보다는 사군자를 한 학기 지나가며 배우는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문봉선은 한 사람의 한국화가이자 강단에 선 교수로서 중국과 일본의 것과 다른 독자적인 우리 사군자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하였습니다. 옛 화보를 답습하거나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식물에 대한 정확한 사생을 통해서 새로운 사군자의 모습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문봉선은 15년간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정확한 모습을 화첩에 사생했는데, 매화는 전남 승주 선암사의 고매와 섬진강변 매원의 매화를, 난초는 안면도와 제주도 등에서 사생한 난을 실제 자연 속에 모습에 충실하게 표현했습니다. 국화는 민가에서 주로 사생한 것을 그렸으며 대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시누대와 구례, 하동 섬진강변의 왕대 두 종류로 나눠 그렸습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그 과정에서 얻은 귀중한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전통을 계승하여 시대에 맞는 사군자를 재창조해내고자 한 문봉선의 그림들은 새로운 사군자 형식을 보여줍니다.〈매화〉는 우리 고유의 한지인 닥지 위에 붉은 아크릴 물감으로 꽃을 그려 참신한 느낌을 줍니다.〈난초〉의 경우 직접 사생한 난을 바탕으로 생생한 난잎과 실제 자연속의 꽃을 표현해 옛 그림의 것과 다른 신선함이 엿보입니다.〈국화〉에서는 농담만으로 잎을 그리고 담채로 꽃을 그린 다음 먹색으로 잎을 표현하는 옛 기법도 함께 시도하고 있습니다.〈대나무〉에서는 가는 줄기와 크고 긴 잎에서 단순미를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전통의 사군자와 달리 화제(畵題)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화제의 의미보다는 매․란․국․죽 자체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조형미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