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金玄植, 1965-)은 회화 속에 시간을 포획한다. 수평으로 레진을 올리고 마른 후 칼과 송곳으로 수직선을 그은 후 물감을 바르고 다시 레진을 올려서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거듭되는 작업의 결과로 무한공간이 펼쳐진다.
현(玄)은 세계의 불가사의한 섭리를 일컫는 형용사이다. 현(玄)은 우주가 운영되는 알 수 없는 비밀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따라서 현묘하다. 적막무짐하다.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두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을 다만 직감할 수 있다. 그것이 현(玄)의 세계다. 이 말은 춘추시대와 위진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사용된다.
김현식 작가는 모더니티 회화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고민해왔다. 모더니티 회화는 풍경과 인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던 고전적 회화에 대한 반발로 태어났다. 이와 다르게 동아시아의 경우 풍경과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심경(心境)과 대상이 완벽히 감흥을 이루는 경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관물회신(觀物會神)이라 한다. 김현식 작가는 관물회신의 정신으로 세계와 마주했다. 아울러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현묘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관점으로 세계를 파악하여 모더니티를 재해석했다. 김현식이 그리는 세계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빛나는 색채의 이면의 무한 속으로 한없이 침잠하는 동시에 이내 앞으로 질주하듯 다가오는 수직선들의 운동은 유례가 없었던 새로운 회화이다. 김현식의 회화는 우리 고전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모더니티 철학의 문제의식을 재해석해 얻은 결실이다. 이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은 현재 서구의 미술 현장에서 인정받아 후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
– 「현(玄)」 | 이진명 ·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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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