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 맞으며 기본을 갈다 -권기윤의 실경산수 성실이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효율이 더 중시되는 시대다. 농경시대에는 남보다 일찍 일어나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성실성이 결과를 담보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실성이 꼭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기업은 성실한 직원보다 유능한 직원을 원한다. 하루 12시간 동안 세일즈 하러 나가도 하루 4시간 세일즈 한 사람보다 더 적은 매출을 올린다면 일 많이 했다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적게 받아가는 것이 ‘도덕적’이다. 이런 효율의 지배를 촉진하는 최근의 흐름 가운데 하나가 ‘20:80 사회’의 도래다. 유능하고 창의적인 20%가 나머지 80%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들은 창조 경영, 감성 마케팅 등을 외치며 기업 활동에 문화와 예술의 요소를 더하고 있다. 예술과 예술가들로부터 창의력과 상상력을 배우거나 영감을 얻으려는 기업인들의 노력은 이제 예술학도들의 그것 못지않다. 앞선 감각과 순발력, 경계를 뛰어넘는 파격, 기지, 역발상 등 창의력과 상상력에 기반을 둔 기업 활동은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과 가치 중심의 사고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창의력을 효율을 극대화해주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효율과 성과, 가치 만능의 시대에 오로지 성실을 미덕으로 세상과 담 쌓은 농부처럼 그림의 기본을 갈고 또 가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런 예술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남들은 예술에서 튀는 감각과 순발력을 배우려 하는데 예술을 하면서도 오히려 답답할 정도로 기본과 원칙, 성실성을 이야기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국화가 권기윤이 바로 그런 성실의 미학을 대표하는 화가다. 권기윤은 그가 사는 안동 일대를 비롯해 우리 산하 곳곳을 다니며 꾸준히 사생을 해온 산수화가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도 대상과의 진정한 만남을 주지 않는다고 꺼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장을 찾아다니고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런 꾸준한 사생에 더해 10년의 세월을 두고 붓글씨를 배워 그림의 필획을 계속 가다듬어왔다. 한문을 제대로 읽기 위해 들인 시간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이 모든 게 그로서는 다 그림을 ‘옳게’ 그리기 위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그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제 50대 중반에 이르렀으나 그렇다 해서 결코 서두를 마음도 없다. “옛 사람들은 그야말로 일생을 살면서 개체로서의 삶의 마감을 종결이라고 보지 않고 후손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지속되고 나아지기를 바라는 열망을 지녔다. 나이가 얼마냐 하는 것에 조바심 내지 말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의 발언에서 느낄 수 있듯 그의 눈은 타고난 원시다. 멀리 보고 길게 본다. 밭을 똑바로 갈려면 발 앞의 흙더미에만 신경을 써서는 곤란하다. 권기윤은 세대의 간격조차 넘어서는 긴 시선으로 좌표를 헤아린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독립적인 개체의 그것이 아니라 대를 잇는 공동체의 그것으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서양 현대 예술가들의 철저한 개인주의와 선명히 대립된다. 그렇게 그는 원시로 세상을 본다. 이런 권기윤이 작금의 트렌드나 새로운 사조에 관심을 갖고 이에 일희일비하며 매달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는 겸재와 단원이 가졌던 고민과 숙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사람이다. 그에게 겸재와 단원은 어제의 사람이 아니다. 그가 있는 한 그들은 오늘의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잇는 후배들이 생겨나는 한 그들은 내일의 사람이기도 하다. 문화와 예술이 개인 활동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개체를 넘어서는 유구한 역사의 퇴적물이기도 하기에 어제의 이슈는 - 의도적으로 역사를 몰각하려는 것이 아닌 한 - 여전히 오늘의 이슈다. 누군가는 계속 고민해야 할 현실의 문제다. 권기윤이 선배화가들로부터 물려받아 탐구 중인 최대의 이슈는 ‘사실정신(寫實精神)’이다. 18세기 조선 선비화가들의 사실정신은 실경산수의 전통을 이끌어냈다. 단순히 우리 산하의 실경을 본격적으로 그려 의미를 띠었다기보다 그렇게 우리의 실제와 실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우리 회화사에서 전례 없는 독자성과 독창성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띠는 미술이 실경산수다. 동국진경은 기본적으로 이런 사실정신에 입각해 그 튼실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주체적으로 얻어낸 소중한 예술사적 성과가 과연 얼마나 그 의미에 걸맞게 평가돼왔고 또 계승돼왔는가? 그 부분에 권기윤은 누구보다 강한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런 만큼 그는 오늘도 그 가치를 되새김질하며 예리한 사실정신을 벼리고 있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 이것은 오늘날 한국화의 발전 방향을 위한 화두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외래의 미술 사조와 조형 양식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와 미처 소화해낼 겨를도 없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이 뿌리째 뒤흔들리는 때는, 미의식과 가치기준의 혼란을 바로잡고 새 시대의 조형 요구에 호응함은 물론, 현대인의 삶과 정신에 진정한 휴식과 청량감을 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권기윤의 집념과 태도는 꼿꼿하게 좌정한 선비의 자세와 다를 바 없다. 그런 태도가 그의 붓에 기를 불어넣고 그 기가 대상을 정확히 재현한다. 여기서의 재현이란 단순히 외양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궁극적인 에너지와 리듬을 구체적인 형상에 실어 생생히 드러내는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서의 자연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의 자연을 함께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의 화론을 세심히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동양의 수묵화는 처음부터 추상성을 띠는 동시에 사실성을 아울러 지닌다. 그 까닭은 화가들이 사물의 구체적 현상을 통해 우주적 영기(靈氣)의 순환적인 호흡을 감지하고 이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양화에서 사실화와 추상화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양상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것으로, 이런 추상 표현의 특성은 동양 회화의 원류적 전통이 되어 왔다. 그리하여 기운생동을 창작과 감상의 궁극적 목표와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대상의 형상을 모사하되 그것의 형태에 메이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표현함으로써 사실성과 추상성이 하나로 합일되는 것, 그 경지가 바로 동양 수묵화의 경지이며, 권기윤이 추구하는 경지인 것이다. 사실정신은 단순한 현상 모사가 아닌, 이런 사실성과 추상성의 온전한 합일을 통해 구현된다. 그가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도 꺼려하고 기억에만 의존해 그리는 것도 저어하는 것은 이런 온전한 사실정신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공기를 맡고 빛을 받으며 그림을 그릴 때 화가와 대상은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그림과 자연이 하나가 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사실정신의 획득, 곧 사실성과 추상성의 진정한 합일은 이렇게 현장 작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하기에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화구를 들고 먹을 것을 챙겨 뜻을 같이하는 화우들과 자연의 품으로 떠난다. 우리의 전통 실경산수는 바로 그런 사생의 깊은 의미를 권기윤에게 명확히 인식시켜주었다. 제 산하를 있는 그대로 똑바로 볼 줄 알았던 선배들, 제 산하의 기와 운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제대로 짚을 줄 알았던 선배들이 그에게도 그처럼 땅과 물을 느끼도록 충동질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권기윤이 내놓은 그림은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그린 것 가운데 선별한 것이다. 10년이 아니라 1년만에도 강산이 변하는 요즘, 10년의 세월을 묵혀 개인전을 여는 권기윤의 뚝심은 진정으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것이다.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느라 들인 세월이지만, 그는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고 거창한 것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그림이 사생 나가서 그리기에 적합한 크기의 그림이고, 그 그림들 또한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 철저히 순응한 그림들이다. 그것을 넘어서려는 욕심이 없기에 풍족하든 부족하든 순간의 만남에서 얻은 영감과 표현을 자족의 도에 담아 성실히 풀어냈다. 그 안분지족, 그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볼수록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실 우리 산하는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다. 우리의 인정 또한 그리 요란하거나 과장되지 않다. 구수하고 순박한 삶을 은근하고 소박한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발효시켜 온 것이 우리네 역사다. 고려청자의 비취빛도 조선백자의 유백색도 우리 특유의 담박한 기품을 발산해 저리 아름다운 것 아닌가. 추사 김정희는 “죽을 때가 되어 생각해보니 가장 가까운 벗은 마누라와 자식과 손자이고, 가장 좋은 음식은 김치와 깍두기와 산나물이었다”고 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감각의 달인이 가장 좋은 음식으로서 김치와 깍두기, 산나물을 꼽을 때 그 소박한 맛이 주는 감동의 경지가 어떠한 것이겠는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권기윤의 그림이 추구하는 사실정신, 권기윤의 예술이 드러내고자 하는 한국의 미는 바로 그런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의 경지다. 보면 볼수록 정직한 아름다움이 우러나는 맛깔스런 그림, 그런 그림이 권기윤이 지향하는 그림이다. 권기윤이 돌아다닌 사생지는 안동, 봉화, 포항 등 경북 지역에서부터 충북 제천, 단양, 괴산, 경기 여주, 금강산 등 우리 땅의 넓은 지역을 아우른다. 그렇게 늘 순례자의 시선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그때그때 자연이 주는 흥취와 날씨, 화가의 심사에 따라 빛과 맛을 달리한다. 일례로 충북 단양의 사인암을 그린 그림의 경우 봄에 그린 것과 여름에 그린 것이 느낌에 있어 완연히 다르다. 덥고 울창해 화가의 콧등에 땅방울이 맺히게 했을 풍경과 스산한 듯 따사로운 듯 변덕스러운 봄빛에 건조된 풍경은 보는 이의 가슴에 서로 다른 바람을 불어넣는다. 권기윤의 붓은 기본적으로 절제된 갈필을 바탕으로 맵자한 짜임새와 균형을 유지하며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움직인다. 중용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붓놀림이다. 하지만 이 붓놀림도 그때그때의 감흥에 따라 속도가 더 붙거나 물기를 더하곤 하는데, 충북 단양의 상선계를 접사의 시선으로 그린 그림이 그같은 감흥을 특히 잘 전해준다. 필획의 빠른 속도나 다소 풀어진 구성이 분방하고도 자유로운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경복 안동 가송리를 그린 그림에서 보듯 그의 그림은 대체로 안정된 구성 아래 모든 게 맞춤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서 운율의 진폭이 좀 더 커지면 충북 괴산의 수옥폭이나 소금강 구룡폭 그림처럼 완비된 짜임새 위에 기상이 도저한 그림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권기윤의 필획이 얼마나 튼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지는 담채화보다 백묘 그림에서 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채색이 그의 멋진 선을 너무 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백묘는 세련되고 유려하며 미묘한 뉘앙스로 가득하다. <분황사 모전석탑>이나 <경북 봉화 청량사> 같은 백묘를 보노라면 그 허허실실의 깊은 맛이 보는 이의 마음 현을 우수 짙은 가을 공기처럼 떨게 한다. 이런 남다른 역량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 그의 붓은 어쩌면 균일해 보인다 싶을 정도로 고른 질적 성취를 끌어내고 있다. 물론 질의 편차가 적다 해서 그의 그림에 타작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만에 전시를 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가 그만큼 전시의 출품작을 엄선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모두 그의 남다른 성실성을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오늘날은 성실성보다는 효율과 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우리 전통회화가 엄격한 양식과 전통, 그리고 고래의 철학을 중시하다 보니 얼핏 이 시대의 빠른 속도와 자유로운 사고,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맞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권기윤은 그 어떤 화가보다 과거의 사유와 형식을 사랑하고 그 진미를 깊이 탐구해온 예술가다. 그만큼 진실하고 성실하기는 하되 창의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효율이나 창의성이라는 것도 뿌리 없이 중구난방으로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가 튼튼할 때 비로소 제 가치를 발휘하는 그런 덕목들이다. 효율이라는 것은 기초가 워낙 튼튼해 더 이상 기초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그만큼 절약된 과정과 빨라진 속도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것도 한 영역이나 분야에 대해 정확하고 충실하게 이해함으로써 그 영역이나 분야의 한계를 비약적으로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한 영역이나 분야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면 무엇을 넘어서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창의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이 말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이야 말로 효율과 창의성의 길을 가장 바람직스럽게 제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동양의 미학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담은 말이자 예인으로서 권기윤이 평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 말임을 감안한다면 권기윤의 작품이 창의성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속단임을 알 수 있다. 권기윤은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그 길은 무조건 서둘러 가는 길이 아니다. 높은 탑을 쌓기 위해서는 그만큼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한국화의 기초가 무엇인가? 권기윤은 이 물음을 지금도 진득하게 묻고 있다. 우리 미술이 상당 수준 국제화돼 있다지만, 그가 보기에 우리 미술, 한국화의 기초는 아직도 위태위태하다. 남보다 앞서가는 게 그 무슨 대수이겠는가. 초조와 불안에 쫓기는 거라면 그건 뒤처져감만 못하다. 경지가 열리는 것, 이치가 트이는 것은 내가 시간을 정해서 다툴 일이 아니다. 개체로서 수명의 한계 안에서 ‘영광’을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원시를 지닌 권기윤은 개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다 총체적인 인식의 눈으로 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린다. 비록 그리는 것은 한 세상이나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늘 온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