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림의 ‘옻 그림’은 전통의 뿌리를 튼튼하게 가진, 그러면서
더욱 새롭고 다양한 진화과정에 있다. 그의 예술은 세련된 옻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보석디자인기술의 완성도가 뒷받침 하는 공예적 전통과, 그것을
다시 현대미술과 만나게 하는 적응력이 매우 주목을 끈다. 현대미술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개념과 물질, 비물질, 행위, 아방가르드의
전복적 가치들이 연대하여 만들어낸 자극적인 퓨전 요리라면 채림의 예술은 옻칠이 빚어낸 감칠맛 나는 시적, 감성적
풍경화이다.
채림은
옻칠에서 획득한 회화적 자신감과 보석디자이너로서 닦은 기능성을 바탕으로 입체 작품에 도전했다. 세공 기술의 한계를 옻칠로 확장시킨 것처럼, 보석디자인의 장점이자
약점인 장식성을 제어하면서 과거 부조나 판넬에서 창조한 서정적이고 유연한 감성의 입체들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시도가 농익어 자주적 질감과 미적 동기를 찾아갈 때가 되면 채림의 예술은 드디어 하이브리드(hybrid) 미학이라는
현대미술의 다채로운 옷을 입고 재도약 할 것이다.
채림은 보석이나 장신구들처럼 물질이
기능적으로 바뀌는 순간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를 갖게
되는 현상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말하자면 기능이 없는 ‘물질’과 기능이 입혀진 ‘비물질’ 사이의
아름다움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 그리고 다시 기능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 사이의 감성의 차이를 세밀하게
표현한다. 그러므로 기능이란 라벨이며, 이 사회적 라벨이
형성해 온 편견의 무게를 버리도록 유도하는 상징시들을 옻칠이라는 확장된 예술의 그릇에 담아 놓는다. 말하자면
각기 다른 개체들의 아름다운 색채와 도형들이 뿜어내는 생명현상이
목격되도록 순수한 예술의 옷을 다시 입히는 것이다.
– 「옻칠로 쓴 서정시」 中 발췌 | 이용우 · 미술이론가, 상하이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