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근작 회화의 소재들은 어디에서 왔나.
개인적인 서사가 근작 회화의 맥락을 관통한다. 군대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경험을 자주 떠올린다. 〈원뿔〉(2020)의 화면 전면에 등장하는 형상은 뾰족하고 차가운 수술용 나사를 상징하는 도상이다. 당시 거대한 병동, 침상 위에 가지런히 누운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계화된 개인의 인간성에 대하여 생각했다. 곧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 대상의 경계에 놓인 것들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갔다. 몸과 사물, 삶과 죽음, 개인과 단체의 관계에 대해서다. 군용으로 사용되는 〈A형 텐트〉(2021)는 안과 밖, 나아가 자연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은 경계를 이루는 대상이다. 대상 사이를 차단하는 가림막이지만, 두텁고 견고하지는 않아 둘 사이 매개체로서의 역할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두 대상을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 짓는 소재다. 〈캠핑〉(2020)에는 텐트를 비집고 나온 발을 그려 넣었다. ‘경계선’으로서의 소재를 강조하려 했다.
Q. 비인간적 소재를 사람의 몸에 비유한 점이 흥미롭다.
군용 텐트를 순서에 따라 조립하며 그 구조의 안팎에 놓인 ‘나’에 대해 고민했다. 텐트를 이루는 부품들은 단독으로서는 쓸모없는 존재다. 개별 부품들은 비상시 설치와 운반에 용이하도록, 가장 효율적으로 전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자신의 모습을 정제했을 것이다. 완성된 텐트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천이 마치 사람의 피부 같았다. 〈겹쳐진 텐트〉(2020)에서 보이는 것처럼, 얇은 막으로 내면을 숨긴 채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텐트의 형상이 유기체의 몸처럼 느껴졌다. 화면에 등장하는 텐트들은 땅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아 불완전하며, 그러므로 유동적이다. 〈부품들〉(2021)에 등장하는 기계 부품들 역시 군대에서 총기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교육을 받으며 발견한 소재다. 작은 쇳덩어리들이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를 신체의 장기에 빗대어 봤다.
Q. 소재를 기하학적으로 해석한다. 화면 구성에서도 수직, 수평적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근작 회화에서 소재의 수직적인 나열과 전면 배치가 두드러지는 까닭은 주제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군대 및 사회의 특성을 내비치고자 수직, 수평의 구도를 주로 잡았다. ‘정렬된 신체’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단순한 도형과 도상들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화면을 앞으로도 발전시켜 보고자 한다. 〈A형 텐트〉의 화면 상하부에 보이는 도상의 반복 나열은 주제를 상징하는 동시에 장식적인 요소로서 역할한다. 고전 회화에 관심이 많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의 화면이 드러내는 안정적인 대칭 구도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기하학적 구성을 좋아해 영향받았다. 화면의 서사와 별개로 표현에 있어, 구성과 색채가 드러내는 균형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