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학고재 개인전에서 윤석남은 드디어 본궤도에 오른 채색 여성초상화를 보여준다.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대형 채색 초상화와 설치작 <붉은 방>이 전시될 이번 전시를 위해 윤석남과 소설가 김이경은 몇 달간 협력하며 인물을 선정했다. 김이경은 기록과 문헌을 바탕으로 14인의 독립투쟁을 소설 형식으로 각색하고 소개하는 글쓰기 작업을 맡았고, 윤석남은 김이경의 글을 참고해 그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김이경의 글은 전시에 맞춰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 이번에 소개되는 14인(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은 일제강점기 여성운동과 구국을 위한 항일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이다. 여성독립운동가라면 자연스럽게 유관순을 떠올리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이름이 낯설 것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함께 독립투쟁을 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지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윤석남은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얼굴과 독립운동의 방법을 알려주는 상황의 묘사나 단서를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녀에게 얼굴은 타자의 존재 방식이자 나와 타자와의 정신적 교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다시 말해 사진 등 얼굴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그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얼굴 중 특히 눈을 통해 내면의 기운이 전달된다고 생각해 항상 생생하고 강렬한 눈의 묘사를 중요시 여겨왔다. 얼굴 다음으로 손은 실행 수단으로서 크고 중요하게 묘사된다. 작가는 제일 먼저 작은 사이즈로 얼굴 드로잉을 하고 인물의 특성을 파악한 뒤에야 원본 크기의 초본을 만들어 한지에 옮기고 채색으로 마무리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얼굴 드로잉과 소형 초상이 대형 초상화와 나란히 전시되어 초상화의 제작 과정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윤석남은 앞으로 여성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2-3년 내에 100인의 초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윤석남의 초상화는 여성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할 것이다. 초상화의 수가 많을수록 그 효과는 커지리라 생각한다. 그 초상화를 통해 윤석남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민족과 국가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립’이 무엇인지 진중하게 묻고 있다. 세상은 크게 변했지만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물음은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녀는 이번 개인전에서 채색화의 기법을 독창적인 어법으로 한 단계 발전시켜 그 물음에 다가가고 있다. 덧붙여 서양화와 동양화라는 애매한 경계선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한국미술계에서 윤석남의 채색 여성초상화는 둘의 경계 짓기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점에서도 과히 도전적이다.
「세상을 뒤흔든 여자들: 윤석남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채색 초상화’」 中 발췌 | 김현주 · 추계예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