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종구 화백을 땅과 농민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탁월하게 그려내 온 화가로 인식한다. 나는 그 인식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나는 같은 학교에서 일하며 여러 번 확인했었다. 학생들이 농촌활동을 하는 곳에 찾아가면 언제나 그가 한 걸음 앞서 다녀간 다음이었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 해마다 막걸리와 삼겹살을 사들고 농민들과 함께 하려는 제자들을 찾아다니는 교수를 나는 그 이외에 본 적이 없다. 어떤 기억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농민들의 주름진 인생을 그가 맡아 그려온 것 또한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인식의 절반만 맞는 이유는 그가 기울인 다른 관심과 그가 그린 다른 그림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로서의 선택과 도전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랍의 뒷골목에 버려진 교과서와 공책을 보면서 물건 주인의 운명을 떠올리는 지구적 상상력을 지닌 예술가이며 자본주의의 지구적 팽창 과정과 결과를 캘리포니아 쌀 포대에 담아 그려낸 세계 유일의 화가다. 그가 농촌과 농민을 그렸던 것은 그가 농촌화가여서가 아니라 삶의 근원적 형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아는 드문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은 이미지를 이야기로 만들고, 좋은 그림은 이야기를 이미지로 만든다. 이종구 화백은 놓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서사의 맥락을 누구보다 잘 꿰뚫어보고 끈질기게 천착하며 뛰어나게 형상화해왔다. 별이 되어야 마땅할 서사의 주인공들에게 그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에 그는 게으른 적이 없었다. 그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만 오백여 명에 달한다. 그전에 그렸던 사람들을 다 합친 숫자보다도 많을 것이다.
그가 그린 별들이 어찌 오백여 개뿐이겠는가. 우리 시대를 구원하는 별이 된 단원고의 아이들과 선생님, 지구적 평화를 만들고 한반도의 봄을 이끌어낸 16,894,280개 광장의 별들까지 그 숫자는 셀 수없이 많다. 그 별들을 위해서라면 미학적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 그는 말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해야 마땅한 아름다운 사람이 놓였던 자리를 분명하게 새겨두기 위해 거리두기라는 미학적 우회로를 봉쇄해버린 그의 선택으로 발생할 손해가 있다면 그건 예술의 손해이지 이종구의 손해일 수 없다. 그의 과감한 미학적 투지로 인해 그 어떤 예술보다 감동적이었던 현실이 비로소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의 손끝에서 별이 된 사람들 - 가슴 아프고 거룩한 섬광의 기억』 中 발췌
방현석 l 소설가, 중앙대학교 교수
방현석 l 주요작품으로 <새벽출정>, <내일을 여는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세월>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부총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