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얄과 몽당붓으로 쏟아낸 그리움의 정화(精華) 추상과 구상, 동서양이 융합된 송현숙의 예술세계 재독작가 송현숙 그림의 바탕은 연녹색조와 검은색조이다. 무한의 깊이를 간직한 바탕에 그어진 획은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하다. 머나 먼 이국에서 이방인으로서 떨칠 수 없는 외로움과 떠나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 질기고 고운 작가의 영혼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남 담양군 무월리에서 태어나 자란 송현숙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72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고향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틈틈이 그림으로 표현하던 그는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진학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만의 색깔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서양의 중세회화에서 사용되던 템페라라는 물감을 자신의 물감으로 선택하게 된다. 달걀과 안료를 섞어서 사용하는 템페라는 수성으로 무광택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송현숙은 이 물감을 찍어 그리는 붓으로 귀얄을 사용한다. 송현숙의 화면에는 말뚝기둥, 가옥의 한 켠, 항아리, 늘어뜨린 삼베나 모시와 같은 천, 죽림과 인물 등 일정한 형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형상을 한껏 추상화시켜 간략하게 표현하고 그 그림의 제목으로 몇 획 혹은 몇 획 위에 몇 획 하는 붓질 획수를 사용한다. 추상과 구상, 한국의 붓 귀얄과 유럽의 템페라 물감, 그리고 단숨에 긋는 한 획의 감성과 획 수 제목의 이성처럼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 곧 송현숙 회화의 특징이다. 그리움을 통해 그 대립을 조화시킨 에너지가 바로 그의 예술이 지닌 강점이다.(이태호 교수,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번 전시에는 정성스레 바탕을 다듬질하고 그 위에 말뚝, 우물, 집, 옹기항아리 등의 형상을 한 획 한 획 그어서 완성한 송현숙의 대표작 40여 점이 전시된다.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작가의 기량이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