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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 그 사이 

이수홍 

 

안과 밖 그사이-이수홍의 최근작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혼돈스러운 세상이다. 우리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를 정당의 정강정책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대형사건이 터져도 서로 다른 주장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올 뿐 진실은 늘 실종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욕망은 새로운 상품과 광고에 추동되어 끝없는 확대재생산의 길로만 나아갈 뿐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결여돼 있을 때가 많다. 욕망이 내 안에서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추동되는 까닭이다. 세대 간의 단절은 문화의 빠른 지형 변화를 통해 더욱 촉진됨으로써 세대 간 갈등은커녕 무관심과 냉소만 팽배해지고 있다. 이렇듯 푯대와 기준이 없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솔직한 단면이다. 이수홍이 그의 예술을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좌표를 모르는 사회, 혹은 좌표가 오작동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겪게 되는 개인의 방황과 갈등을 그는 매우 이지적인 작품들을 통해 드러낸다. ‘안과 밖, 그 사이’란 타이틀이 붙은 그의 최근작 가운데 나무 몸통 중앙에 십자가 꼴로 홈을 판 작품 또한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좌표를 의미하는 십자가, 홈통 꼴의 그 십자가는 보는 이의 위치와 거리, 간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이수홍은 그 차이를 드로잉으로 그려 벽면에 붙여놓았다. 하나의 좌표조차 통일적으로 공유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은유하고자 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면 오히려 그 불명료함과 차이, 사이, 혹은 간극 따위를 인정하고 그것들에 대해 보다 지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하나의 진실, 하나의 해답을 얻을 수 없다면 그 근사치의 윤곽만이라도 분명히 나타나도록 그려보려는 것이 양심적인 인간의 태도가 아닐까? 모든 가치와 기준이 허물어졌다 하더라도, 또 설령 그런 것이 다시는 존재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를 다시 세우려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히 평가할 만한 인간만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간은 어디까지나 윤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때 해답이 안보인 다고 무조건적으로 어떤 하나를 해답으로 던져놓고 맹목적으로 이를 추인하는 것은 결코 윤리적이지도 않으며 민주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전제주의의 전형일 뿐이다. 이성은 해답이 빈자리, 그 주위의, 혹은 사이의 간격을 늘 용인할 준비가 돼 있다. 이수홍은 바로 그 부분을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하려 노력해왔다. 이수홍이 이렇듯 흔들리는 진실, 혹은 해답과 그 갈등하는 것들 사이의 비좁은 공간을 주시하게 된 이유 가운데는 군인의 아들로서 다섯 번이나 전학을 해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서울에서 광주로 이사 갔을 때는 서울깍쟁이로 놀림을 받았고, 광주에서 경북지방으로 전학 갔을 때는 전라도 아이라고 놀림을 받았으며, 경북에서 서울로 전학 갔을 때는 촌놈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한다. 당시에는 그때그때 다른 아이들의 기준에 적응하기에 바빴지만 커서 되돌아봤을 때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편견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렇듯 근거 없는 편견이 전체를 사로잡을 때 맞게 되는 이성의 공허는 어린 그로서도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린 시절 그가 겪은 그 혼란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안에서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이는 그가 ‘안과 밖, 그 사이’를 여전히 자기 예술의 주제로 삼고 있는 이유이다. 자연산 나무의 속을 그 나무의 형태를 따라 도려내 그 나무와 같이 전시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온 이수홍. 이번 전시에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다양한 미학적 쾌감을 주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특히 주사위 꼴의 육면체 둘이 나란히 놓여 있는 작품은 요즘의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나무껍질로 만들어져 자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고 다른 하나는 합판을 쌓아 붙여 왠지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전자는 안으로 자꾸 위축돼 들어가면서 홀쭉한 느낌을 주고 후자는 밖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부한 느낌을 준다. 마치 개발 논리에 희생되어온 생태와 자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부풀어 오른 것은 우리의 욕망이라고 할까? 이렇듯 안과 밖, 그 사이, 우리가 진정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할 지점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