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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東의 햇빛과 바람, 그리고 

권기윤 

 

권기윤(1954~)은 철저한 현장사생을 바탕으로 독자적 수묵화의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작가의 삶의 터전인 안동일대의 풍경이 담겨 있다. 한국 산악미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안동과 그 주변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은 어느덧 십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는 안동 근교의 너른 들과 강이 커다란 크기의 화폭에 의욕적으로 자리했었다. 그후 그는 인간에게 진정한 휴식과 위안을 가져다주는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암반계곡과 승경들을 사생한 그림을 주로 선보여 왔다. 근래에 와서 권기윤은 안동 주변의 주왕산, 청량산, 일월산 등 경북 북부 일대의 풍광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소품의 현장 사생화에 그대로 옮겨진다. 권기윤의 작품들은 작업 경향과 관심의 초점이 이른바 사실정신으로 일관된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사생방식의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장스케치를 토대로 화실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한지를 대고 그림을 완성하는 제작 공정을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사생방식은 몇 시간이고 풍경과 마주해서, 그 실경 현장에서 그림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조선후기 선비화가 관아재 조영석이 주장했던 ‘卽物寫眞’으로, 살아있는 그림(活畵)을 그려내고자 했던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권기윤의 작업에서 이러한 정신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함께 회화의 상도(常道)에 대한 체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다. 그는 겸재, 현재, 능호관, 표암, 지우재, 단원, 고송유수관도인 등 옛 화가들의 화법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해왔다. 이렇듯 그의 그림은 전통화법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스스로의 필묵법과 조형정신으로 자연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에 전통의 형식만을 답습하는 진부한 그림들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 ‘권기윤展-安東의 햇빛과 바람, 그리고 산과 물’은 최근 3~4년간의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번에 출품되는 안동의 〈무릉〉, 영양 일월의 〈칠성봉〉 등의 수묵선묘의 사생화와 괴산의 〈수옥정〉, 문경의 〈용추〉, 청송의 〈방호정〉 등의 농묵담채화 작품에는 활달한 붓의 움직임과 채색의 맑은 맛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봉화의 〈청량산〉, 안동의 〈무릉(2)〉, 〈대사(2)〉 등은 중경과 원경의 여백을 살리는 공기감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한국화에 있어서 ‘전통의 올곧은 현대적 수용과 계승’은 절실한 문제 제기인 동시에 바람직한 방향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안동의 햇빛과 바람 그리고 산과 물을 통해 회화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나름의 치열한 해법을 성실히 찾아가는 작가 권기윤의 작업들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