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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展 

김선두 

 

김선두는 보다 자유로운 질료의 선택과 筆, 구도의 영역을 확장시켜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여온 작가이다. ‘역원근법’ 구도와 개성적인 형상, 색감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회화의 실험 정신을 보여 주는 그는 93년 석남미술상을 수상한 이래 현대 한국화를 이끌어 갈 작가의 한사람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김선두는 한동안 경제개발시대의 애환이 서린 서민들, 자신이 어릴 때 뛰놀던 고향, 그 주변 지역의 산과 들 그리고 ‘그리운 잡풀들’시리즈로 잊혀져 가는 우리 토종 꽃과 풀들을 표현해 왔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행(行)’연작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변하지 말아야 할 세계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태를 동시에 선보이는 독특한 작품을 보여준다. 기존의 ‘역원근법’ 구도와 오방색 등 우리의 전통색을 사용한 그림에 유리나 아크릴판을 씌워 달력과 메모의 기능을 덧보탠 이번 전시작들은 현대 한국인들의 실존적 좌표를 인상깊게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행-새벽에’, ‘행-황토’, ‘행-육자백이’ 등 작품제목에서부터 가는 것, 흘러가는 것, 나아가는 것에 대한 그의 깊은 사색이 묻어 나온다. 이 ‘행(行)’연작이 나오게 된 계기는 어느 해 단 하나의 달력도 받아보지 못한 아주 일상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열두 달치를 다 만들자니 아무래도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 궁리를 한 끝에 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유리를 씌우고 거기에 날짜를 적어놓기로 했다. 지금도 작업실에 걸려있는 그 달력을 보면서 김선두는 무엇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상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림은 그대로인데, 그 위의 숫자와 또 거기에 사람 만날 약속 등 여러 가지 기록이 매달 바뀌는 모습. 거기서 그는 자신이 천착하는 주제의 유구함과 이 땅에 살다가는 사람들과 세월의 변화가 지니는 순간성, 찰나성, 그 대립항의 조화를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즐겨 다루던 고향과 남도의 풍경, 잡풀 따위를 여전히 표현하면서 그림 이곳저곳에 ㅇㅎㅅㅁㄱㅌㅇ, MTWTFSS, 月火水木金土日 등 요일을 나타내는 기호가 쓰여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 위에 유리나 아크릴을 올리고 거기에 매직펜 등으로 요일에 맞춰 숫자를 쓰고 스케줄 메모를 함으로써 작품은 완성된다. 김선두는 자신의 메모뿐 아니라 주변 친지들의 것도 그들의 필치로 올려 그 다양한 삶과 세월을 비교하고 있다. 또 관람객들에게도 달력에 그들의 스케줄을 적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 안에 지금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삶과 세월이 또 그만큼의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또한 이번 ‘행’시리즈에서 보여지는 잡풀들은 잡풀 하나 하나의 이미지가 한데 뒤섞여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변화한 것들인데, 거기서도 우리는 진정 아름다운 선과 리듬, 조형미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산하의 풀 하나 하나에 우리의 유구한 조형적 아름다움이 배어있고, 그것들이 모여 이뤄지는 조형미에는 그런 것들의 종합 같은, 진정 우리 멋의 풍성한 개화 같은 아름다움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한 생각과 느낌, 자신을 포함한 생활주변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세월의 흔적을 담아내면서 자신의 좌표를 묵묵히 찾아가는 김선두의 근작을 감상하시는 자리가 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