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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미술상’수상展 

강경구 

 

이번 전시는 한국화가 강경구의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이다.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에게는 6년이라는 전시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의 이름은 그룹전이나 공모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남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대신 그는 수련의 시간을 연장했다. 그는 한국 전통 미술의 보고(寶庫)라고 불리는 간송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10년을 지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체계적으로 한문을 익혔으며, 한국과 중국의 화론을 공부하기도 했다. 또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선인들의 훌륭한 작품을 수없이 접하고, 따라 그려보았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작업을 더욱 힘있게 세우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선인들의 그림과 10년 세월을 보낸 강경구가 처음 선보인 작품들은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나 채색화와는 거리를 둔 것이었다. 그것은 이웃에 사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삶의 풍경이었다. 인왕산, 북한산, 한강 자락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 그림들은 ‘서울 풍경’으로 불린다. 흔히 한국화하면 농담과 여백의 미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그의 그림은 전통적 의미의 수묵화와는 화면구성이나 표현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화폭은 풍경이나 사물들로 가득하고, 농묵이 중첩된 화면은 두텁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검은 먹선이 가득한 그의 빽빽한 그림들에는 농담과 여백이 있는 동양화의 담박함이 담겨있다. 얼핏 그가 서양화의 기법을 쓰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마무리된 작품들은 서양화와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은 서양화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한국화를 해석하고, 진지하게 한국화에 접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다. 강경구는 얼마전 경기도 용문산 자락에 있는 작은 오두막에 작업실을 내서 ‘숲’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 역시 숲이 주를 이룬다. 강경구 숲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지 않다. 그것은 임의로 그려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숲이다. 그는 다소 거칠고도 서툰 듯한 붓질로 소박하고 단순한 세상을 꿈꾼다. 그가 소망하는 세상 풍경 속에는 새도 있고, 사람도 있다. 다만 그 숲 속의 새와 사람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는 달라서 숲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지도 않고, 숲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소리 높여 주장하지도 않다. 그들은 그저 숲에 순응하고, 숲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생명체들이다. 때론 숨은 그림 찾기처럼 나무와 덤불 속에 가려있는 새와 사람을 찾아야 하지만, 그 모습들은 모두 순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해 가는 가속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나 새로움이 아니라 강경구의 그림에서처럼 이해관계를 떠나 편안히 쉴 수 있는 삶의 공간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기운찬 먹선이 뿜는 자연의 소리, 생명의 공기를 느끼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