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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假花) 

홍성담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알려진 홍성담 선생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한국 문화의 역사, 그리고 한국 대중운동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우리 민족의 이야기로서 사실적으로 풀어낸 작가이다. 군부독재의 유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80년대 극도로 억눌린 사회의 무게를 둘러매고 민족의 아픔을 작품으로서 표출하였고 그 외에도 《한국의 근대 인물사》전, 《조국의 산하》전, 《점 占》전 등의 전시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다루어왔다. 이번전시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동북아시아의 정체성과 샤머니즘에 심취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현대적 조형언어와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샤머니즘은 이성적인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 비이성적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세계의 일치와,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의 정신이다. 전시에 출품되는 20여점의 작품들은 바데라기, 우주나무, 지전, 북두칠성, 연꽃, 고 매듭 등의 샤머니즘적 상징을 품고 우리시대의 아픔과 고통, 갈등 따위를 해소하려고 한다. 이는 마치 한 판 굿판을 벌인 듯 보는 이의 마음속을 정화시킨다. 여러 가지 이야기와 많은 상징들로 삶과 죽음, 선과 악도 결국 하나의 순환원리로 품어 안으며 문명의 쓰레기조차 생명의 원력으로 재생해내는 동북아시아적 상상력을 그린 <신 몽유도원도>, 21세기 문화 아이콘인 사이버 세계와 아바타 문화에서 샤머니즘의 전통을 찾아보는 <가화>는 동북아시아적 휴머니즘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집대성한 작품들로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대작 그림의 주요 모티브들을 독립적인 그림으로 따로 그리는데 <오신>, <청신>, <영신>등의 ‘신’시리즈가 그것이다. 상상속의 아름다운 꽃나무 한가운데 자리잡은 밥그릇은 한국인에게 ‘양식’이 아니라 ‘삶’과 ‘생명’인 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청광장가득 사람들을 불러 모은 붉은 악마의 월드컵 응원과 평화적 촛불시위도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아바타Ⅰ~Ⅳ’ 시리즈는 붉은 악마가 스카프를 들고 일사불란하게 응원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서로 다른, 힘없고, 이름 없는 개개인이 모여서 이루어낸 긍정적인 에너지를 표현한 작품이며, <화종Ⅰ>은 정연한 느낌으로 촛불시위대의 비폭력성과 평화지향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21세기 첨단 과학의 혜택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번전시를 통해 원시적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화 지향적인 동북아시아적 휴머니즘을 느끼고 마음속 쓰레기가지 깨끗이 쓸어버리는 카타르시스의 경험을 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