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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문혜정 / 황인기 / 유근택 

 

예로부터 한국 미술은 대상에 대한 사실적 묘사 보다는 조화로움을 표현하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그 조화로움은 하나의 화폭 안에 담기는 대상들 간의 어울림이기도 하고, 대상과 나 사이의 상호 소통이기도 하며, 나와 그림들 행간의 감정 교류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 회화의 준과 묵법이 대상을 흔들어서 전체를 새롭게 아우르듯, 박수근의 그림은 수많은 요철로 따뜻한 공명을 만들어 내고, 김환기의 작업은 작은 점들이 모여 아름다운 하나를 이룹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이와 같은 미적 특성을 ‘울림’으로 상정하고,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러한 울림의 전통을 문혜정 선생, 유근택 선생, 황인기 선생의 작업을 통해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 전시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문혜정 선생의 작품에는 표현주의적 흔적이 보인다. 울림의 미학과 관련하여 문혜정의 작품에서 주목되는 부분도 바로 그런 표현주의적 즉발성과 대담성이다. 표현주의 미술은 우리 전통미술이 지닌 발묵 효과나 일필휘지의 즉발성을 연상시킨다. 문혜정의 <연> 시리즈는 순간적이고 대담한 붓놀림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청아한 공명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유근택 선생은 대상과 작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 즉 울림에 주목한다. 공중전화 박스가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풍경>은 고독 혹은 소외의 흔적을 퍼 올린 작품이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풍경이 아닌 ‘상황 혹은 정황으로서의 풍경’, 다른 말로 하면 ‘사이의 풍경’이다. 그 사이의 풍경에서 우리는 충만한 일상을 공감하게 된다. 황인기 선생의 <훈풍이 건듯 불어>는 19세기의 화가 이자장(李子長)의 <십팔나한도>를 지하철 광고판지 위에 무려 144배 확대 복제하여 실리콘 방울들로 필선 부분을 메운 작품이다. 황인기 선생이 사용하는 재료인 실리콘은 산업 사회의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우리 전래의 울림의 미학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개체로서 낱낱의 개성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실리콘 작업은 색다른 파장을 전한다. 울림의 미학은 철학적 개념과 테크놀로지, 갖가지 미디어가 난무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미적 동력으로 생각된다. 이번 전시는 개성이 뚜렷한 작가 삼인의 작업을 통해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 공명하는 조화로운 울림을 경험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