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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강경구 

 

강경구는 '서울 풍경'과 '숲' 연작을 통해 한국화에 있어서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을 모색해온 작가입니다. '서울 풍경' 연작에서 강경구는 북한산, 한강, 잠실 등지의 실경을 화면 가득 구성하고, 농묵과 호분을 중첩시켜 꽉 찬 양감을 강조하면서 도시적 감수성을 포착했습니다. 이어 자연이라는 주제로 회귀한 '숲' 연작에서는 특정한 공간과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숲의 풍경을 다소 거칠고도 서툰 듯한 붓질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웠습니다. 사물과 풍경으로 가득 찬 강경구의 그림은 농담과 여백을 중시하는 전통적 의미의 수묵화와는 확연히 달라 얼핏 서양화처럼 보이지만, 그의 그림에는 강렬하고 장쾌한 수묵의 맛이 살아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은 서양화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한국화를 해석하고, 진지하게 한국화에 접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강경구는 '물길' 연작을 출품합니다. 강경구가 작품 소재로서 물을 의식하게 된 계기는 인도여행에서 만난 갠지스 강이었습니다. 힌두교의 성지로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몸을 담그고 싶어 하는 곳, 죽은 사람의 재가 뿌려지고 시체가 떠내려 오고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는 곳, 그곳은 삶과 죽음이 그렇게 만나고 바로 그 만남을 이유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곳이었습니다. 강경구는 물길을 따라 끝없이 흐르는 그 물에서,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 삶의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강경구가 작품에 붙인 제목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층위로 물과 만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길-뜨다>는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으로, 물은 곧잘 이렇게 건너야만 할 그 무엇입니다. <물길-맞이하다>는 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을 그린 그림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맞이할 때 목욕재계합니다. <물길-빠지다>는 물에 빠진 이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사랑이나 그 밖의 감정에 빠진 이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물길-가르다>는 헤엄치는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헤엄쳐 가름으로써 사람은 자기가 목표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도도한 물길과 맞서 건너고 빠지고 담그고 가르는 온갖 드라마를 펼칩니다. 단순하게 그려진 인간상은 익명화돼 있지만, 그것은 우리, 곧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강경구는 특유의 거침없는 붓길로 물길을 잡아나갔는데, 물이 가진 다양한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다 보니 먹으로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크릴 물감과 본드에 갠 안료를 캔버스 위에 진득하게 발라나갔습니다. 재료에 구애됨 없는 작가의 자유분방함은 물감을 겹치고 겹쳐 끝없이 흐르는 물길을 생산해냈습니다. 물은 앞으로도 세상을 가르고 흘러갈 것입니다. 작가는 유유히 흐르는 물길을 통해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전시는 그 물음에 대해 한번쯤 사유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