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는 김혜련이 화가로 입문하기까지 과정은 다채롭습니다. 작가는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후 전공을 서양화로 바꾸었습니다. 서양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작가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마이터쉴러(Meisterschuerin)과정을 이수하고, 공과대학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런 김혜련은 1994년 베를린 시내의 한 화랑에서 독일 비평가와 주요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그 후 한국에 들어와 여러 전시를 통해 창작에 대한 의욕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김혜련은 지난 한 해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소속 창동스튜디오에서 심혈을 기울여 한 작업을 했습니다. 작가는 지난 일 년 간의 결실을 독일과 한국에 동시에 선보입니다. 독일 베를린 미술관의 전시 명칭은 <예술을 위한 신발(Shoes for Art)>로 지난 10월 26일 시작되어 12월 4일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한편 11월 9일에서부터 22일까지 계속되는 학고재 화랑의 전시 명칭은 <신발에서 배로(Ship to Shoes)>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회화 정신에 가교를 놓고 있어 마크 로드코(mark Rothko)에 비견할 만한 회화적인 ‘순수함의 정수’가 담겨있다” 미술평론가인 게르하르트 찰스 룸프(Gerhard Charls Rump)의 지적대로 독일과 한국 전시모두에서 작가는 동양과 서양의 회화 정신에 대한 탐구를 전개합니다. 더 나아가 이번 전시는 우리의 전통신인 당혜 또는 고무신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형태를 통해 존재의 현존과 부재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촉구합니다. <마지막 신발>은 세로 194cm, 가로 259cm로 압도적 크기의 작품입니다. 하얀 선과 푸른 색의 어우러짐입니다. 이 작품에서 푸르름을 가르는 흰색은 그래픽적인 선이 아닌, 회화적으로 그려진 선입니다. 또한 바탕의 색들은 두터운 선의 안과 밖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이렇듯 선으로만 이루어진 신발이 입체적으로 보여지면서 보는 이는 아름다운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다른 작품 <하얀신>의 신발은 우리의 전통 하얀 고무신을 연상하게 합니다.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신 한 쌍이 같은 듯 다른 푸른 바다 위에 놓여있습니다. 거대한 크기의 화면을 심심하지 않게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다양한 움직임의 붓질입니다. 때로는 빠르고 역동적으로, 때로는 느리고 정적으로 붓질이 리듬을 탑니다. 작가는 이런 붓질의 움직임을 동양화의 작법 중에 하나인 ‘골필용법’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붓질이 단지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잔재주가 아니라 온몸의 움직임과 감정 상태가 표현되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붓이 작가의 영혼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서양적인 매제를 동양적인 정신 속에서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이번 전시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느낌의 신발 그림과 함께 <푸른 동자>, <아이 모자이크>등 총 1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됩니다. 이번 전시 <신발에서 배로>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발걸음에 대해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