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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스민 시간 

강요배 

 

강요배는 대단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깡마르고 껑정한 체구에 고집스레 보이는 짙은 눈썹의 강렬한 인상. 아마도 우리시대에 그만큼 날카로우면서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게다. 그런 만큼 강요배는 ‘머리보다 가슴과 몸으로 체득하는 느낌’에 충실한 작가다. 자신의 화두대로 늘 대상과 짙게 교감하는 ‘살肉의 느낌’을 쏟아내 왔다. 1980년대 말부터 제주 민중항쟁사 같은 서사적인 연작을 제작할 때도, 제주로 작업실을 옮겨 제주의 풍광을 담아낼 때도 그랬다. 예를 들어 제주 민중항쟁사 50폭을 “한 서리고 애달픈 제주의 민요와 동요를 100여 곡 끊임없이 반복해서 틀어놓고 그 느낌 속에서 그렸다”고 하는데, 한동안 가락들이 빙빙 도는 환청을 겪을 정도였다고 한다. 강요배의 감성에 가득 찬 화면은 풍경에 흐르는 바람결이나 소리, 그 대상들의 ‘살 느낌’의 질감처럼 두터운 물감과 생동하는 붓자국으로 요동친다. 특히 전통 화구인 먹붓의 일필휘지하는 맛으로 몽롱한 형태를 살려내는, 짙거나 밝은 색 터치의 마무리 감각은 거의 동물적 직관력에 의존한 듯하다. 때론 격정적이거나 고요하게, 때론 불규칙하거나 고른 리듬을 타고 움직인 붓질은 언제나 강요배의 마음, 곧 심상心象을 어렵지 않게 읽게 해준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대중에게 편히 전달하기에 강요배의 그림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40점에 이르는 이번 개인전 작품들은 최근의 생활을 반영하는 듯, 감정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부드럽거나 경쾌한 느낌의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남제주 바닷가의 육각형 바위절벽인 〈총석〉에 부딪히는 포말, 파도가 해변의 벼랑을 치는 소리를 담은 〈절울이〉 그리고 해풍에 질기게 자란 〈신서란〉 등에는 그동안 강요배의 예술 감정을 일깨운 제주의 세찬 바람이 여전하다. 땅에서 자라 땅과 유사색조인 〈감자〉 〈호박들〉 〈무우〉 〈누운 당유자〉 등도 강요배의 예술적 흥을 자극해온 소재다. 제주 말로 분화구를 의미하는 〈굼부리〉는 산 정상에서 굽어본 거대한 암갈색 땅 구덩이를 화면 가득 채운 야심찬 대작이다. 제주의 어느 오름에나 올라가면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으로 구덩이 밑바닥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이들은 모두 강요배가 그동안 섬 땅 제주에서 삭힌 자연의 속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과 달리, 나무와 잎은 생략하고 미색 배경에 무수히 떨어지는 동백꽃들만으로 채운 〈꽃비〉는 색다른 감성의 표출이다. 〈동백꽃잎〉은 화면 가득 벌겋다. 마치 노란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조선 여인을 연상시킨다. 동백꽃은 잘 알다시피 꽃잎이 시들지 않고 활짝 핀 채 나무에서 뚝 떨어지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강요배는 ‘동백꽃 지다’를 제주 민중항쟁 연작의 전체 제목으로 썼고, 50점 연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49번째 작품으로 그려냈다.3 민중항쟁의 처참한 좌절을 상징하던 낙화가 〈동백꽃잎〉과 〈꽃비〉에서 밝고 화사함으로 바뀐 것이다. 붉은 피를 흩뿌린 것 같은 열매의 〈팥배나무〉에는 그야말로 환희에 들뜬 기분이 가득하다. 빨간 잎에 초록 나무를 대비시켜 더욱 그렇다. 〈메밀밭-달〉은 메밀밭 위 동녘 하늘로 막 떠오른 보름달을 담은 것이다. 휘영청 달빛 아래 희뿌연 메밀꽃 색깔이 빛을 발해 하늘마저 훤하게 물들인 듯, 어두운 밤조차 대낮처럼 느끼게 한다. 잔가지가 많은 팽나무 같은 고목의 〈나무-빛〉, 암갈색 산기슭에 노랗게 핀 〈산국〉, 소담하게 흰 꽃이 봉오리를 터뜨린 〈산작약〉 등은 의도적으로 빛의 쏟아짐을 표현한 그림들이다. 이전의 강요배 화풍과 거리를 두게 하는 빛의 환영이 돋보인다. 한편 〈못-비〉는 짧은 붓질의 반복으로 전형적인 인상파풍을 구사한 그림이다. 프랑스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과 유사하다. 〈물색〉은 청정하게 맑은 제주 바다의 색 변화를 맛보게 한다. 반달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감꽃〉의 연두색 새잎과 흰 꽃의 어울림이 싱그럽고, 하얀 낮달의 주변을 감싼 연분홍의 〈억새꽃〉은 가을 향이 따사롭게 다가온다. 감미로움이 펄펄 넘치는 작품들이다. 또한 이번 작품전에서는 정교하게 추상화한 작품으로 〈알〉이 눈길을 끈다. 바닥에 길게 늘어진 선은 여체를 연상시키고, 그 사이에서 쏙 빠진 듯한 하얀 알을 그린 그림이다. 알의 신화적 의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미색 하늘에 뜬 흰 달 같기도 하다. 하늘 배경을 정교하게 밑칠한 위에 일렁거리는 붓자국의 리듬감이 감칠맛 나면서 정갈하다. 봄 들녘을 너울거리는 아지랑이 느낌이다. 〈북천〉은 제주에서 유난히 푸른 가을의 북쪽 하늘을 담은 그림이다. 옅은 바탕색에서 짙은 색으로 블루 톤의 채색을 북돋우면서 화면 가득 소용돌이로 표현한 추상화다. 어딘지 제주의 푸른 바다가 그렇게 하늘에 비친 것 같기도 하다. 〈알〉이나 〈북천〉의 일정한 붓질 리듬은 투박한 질감의 바탕을 즐긴 강요배의 기존 화풍에서 크게 달라진 감성표현이다. 강요배는 감성적이면서도 퍽이나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논리가 선명한 그의 주장은 화가의 길에 접어들면서부터 ‘생각-느낌-상상꿈-도道’4로 대상과의 관계와 창작 과정을 자신의 화론으로 정립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일찍부터 ‘생각’을 앞세웠고, 그 생각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하기 쉬운 예술가에게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예민한 직관과 풍부한 감성의 표출이 강요배 예술의 큰 울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곧 설화적이거나 때론 신비주의적이기도 한 상상력과 적절한 화면 구성이나 형상화의 조형의지는 강요배 예술의 형식적 요체이자 강점일 것이다. 먼저 강요배의 생각이 논리정연한 것은 앞서 거론한 제주 4·3민중항쟁의 연작을 50점의 대서사시로 구상하는 일부터 그 하나하나의 회화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잘 드러나 있다. 각 장면을 추상화하고 형상화한 상상의 힘이 압권이다. 특히 ‘동백꽃 지다 그 이후’에 보탠 흙이 된 민중의 두상들 사이에 던져진 호박꽃을 담은 〈흙노래〉, 흙에 뒤섞인 민중들의 살덩이에 떨어진 동백꽃을 담은 〈살노래〉, 컴컴한 동굴 속 두개골이 입을 쫙 벌린 모습의 〈뼈노래〉가 그러하였다. 강요배의 생각은 화면 구성이나 필치, 곧 회화적 형식에서 우리 전통문화와 교감을 이룬다. 서양 그림의 화구를 사용하면서도 늘 수묵화의 필묵법다운 형식미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려온 것이다. 이는 강요배 회화의 커다란 장점이며, 한국인의 진정한 ‘한국화’를 위한 의미 있는 방향타라고 생각된다. 짙은 선묘로 단숨에 그린 1994년 작 〈세한송歲寒松〉 같은 작품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세한도歲寒圖〉를 연상시킬 만큼, 전통적인 문인화가의 수묵화법에 가깝다.6 이후 수선화, 소나무, 매화, 산목련 등의 그림에서도 여백을 살린 공간 처리나 먹 붓의 맛을 살린 필흥筆興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전에서 강요배의 생각과 느낌의 변모는 꽃과 나무 그림들에도 잘 드러난다. 이들은 작품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선택한 화제다. 앞 시기의 것들보다 전통 화조도풍이나 수묵 문인화풍의 냄새가 한결 짙다. 가을의 벽오동을 그린 〈오동잎〉의 수탉은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의 필의筆意가 배어 있다. 멀구슬나무에 날아와 앉은 직박구리 한 쌍을 담은 〈멀구슬 새〉는 전통적인 화조도풍과 흡사한 구성이다. 잎은 지고 노란 열매들만 매달린 고목나무의 배치와 여백에는 전통화풍을 따르려는 강요배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눈밭의 〈감나무〉, 회색 하늘의 〈겨울 당유자〉, 바람에 쏠린 〈수선화 밭〉 등도 전통 수묵화의 구성법이나 필법을 개성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을 준다. 〈풍송〉은 새잎이 돋는 봄 소나무에 날아온 한 쌍의 제비가 소재다. 사선 구도의 화면에 반복한 사선 터치는 역시 강요배식 바람 표현이다. 화면을 휑하게 비운 〈허공과 나무〉는 문인화격에 가장 근접했다. 두세 개의 마른 잎이 달린 잔가지와 나무둥치를 화면 가장자리로 내치고 잔뜩 여백을 남겨 선미禪味가 가득하다. 〈홍매〉 역시 그 소재가 갖는 의미와 함께 잔가지의 꺾임과 구성에서 문인화풍으로 소화한 그림이다. 복잡한 잔가지의 리듬감과 맑은 분홍색 꽃들이 살포시 피어 봄 내음을 풍긴다. 작업실 마당에 연못을 파고 심었다는 〈백련〉은 물기를 듬뿍 실은 붓의 흐름이 수묵화 느낌 그대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근래 강요배가 즐겨 쓰는 아크릴 컬러 물감의 문제다. 강요배의 의견대로 수성안료인 아크릴이 빨리 건조해 유화보다 우리 전통 수묵화풍과 친연성이 있고, 윤기가 적어 자신의 감성과 맞는 장점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림의 깊이와 섬세한 맛은 오일 컬러인 유화에 못 미치는 점도 없지 않다. 따라서 그림의 대상에 따라 그 재질감과 감정 표현에 적합한가도 신중히 따져 안료를 선택하면 좋겠다. 이번 작품들에서 강요배의 유난한 감성과 생각은 하늘에 경도된 듯하다. 앞서 살펴본 제주의 바람과 땅 그림보다 주제와 표현 방식에서 색다른 색채가 가장 뚜렷하기 때문이다. 강요배가 본격적으로 별과 달의 광채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동안에도 강요배는 제주의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을 간혹 그려왔다. 산언덕 위로 뜬 노란 보름달 〈달〉(1993), 개울에도 비친 일그러진 달 〈월대〉(1994) 등 선월禪月의 그림이나 〈미리내〉(2001)같이 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와 별자리 그림이 떠오른다. 이번의 〈월광해〉는 막 떠오른 보름달 아래 흰 파도가 치는 바다와 흰 구름의 하늘을 하나로 표현한 섬 풍경화다. 섬과 달을 좌우 대칭으로 엄정하게 배치했음에도, 월광을 토해내듯 거친 붓자국이 일품이다. 제주도 동쪽 함덕의 서우봉은 일출로 유명한 장소지만, 오히려 강요배의 감성은 월출의 밤에 닿아 있는 모양이다. 한라산 정상 너른 고원에서 만난 밤 풍경 〈고원의 달밤〉에는 보름달에 별들까지 가세하여 하늘 세상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제주의 투명하고 짙푸른 하늘에 빛나는 〈별흐름〉과 〈별-길〉도 그렇다. 별들은 얼마나 그 찬연한 빛을 발하는지, 주먹만한 흰색 덩어리들이 팍팍 뛰어오르게 표현했다. 이들은 별밤의 고요를 좇는 강요배의 침묵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강요배의 전시작품들을 훑어보니,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일정한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이 눈길을 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다. 〈용폭龍瀑〉 〈주운朱雲〉 〈고원의 가을〉 등에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 〈용폭〉은 폭포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용을 화면 가득 담은 것이다. 너른 바위 절벽을 타고 폭포수가 물방울을 터뜨리며 쏟아진다. 비상하는 용은 강요배의 빠르고 흰 붓질에 의해 역동적인 형상을 보여준다. 〈주운〉은 해질녘 구름 낀 하늘을 그린 것이다. 붉게 물든 하늘에는 흰 구름 조각들의 흐름에 따라 양 날개를 펄럭이는 주작朱雀의 형상이 떠오르도록 표현했다. 오히려 움직이는 구름보다 주작 형상의 하늘이 요동을 치는 듯하다. 청룡과 주작, 두 상상의 동물은 방위신方位神으로, 잘 알다시피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고원의 가을〉 속 맑은 하늘에 피어오른 흰 구름은 얼핏 백호를 닮아 있다. 너른 붓으로 단숨에 뭉갠 붓질이 백호의 힘찬 형상미를 보여준다. 잔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나무-빛〉은 뱀이 거북이를 잔뜩 꼬아 감은 현무도가 떠오른다. 달과 별이 한 하늘에 빛나는 〈고원의 달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정화를 연상케 한다. 나는 이들 사신도 형상을 다시 그려보며 몹시 반가웠다. 1998년 8월 그와 함께 평양의 고구려 고분벽화와 금강산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둘이서 강서대묘와 강서중묘, 덕흥리 벽화고분에 들어가 그 벽화들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흥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용폭〉의 청룡과 〈고원의 가을〉의 백호는 강서대묘, 〈주운〉의 주작은 강서중묘의 벽화를 닮은 편이다. 〈고원의 달밤〉의 별과 달은 덕흥리 벽화고분의 천정화와 연계해도 좋을 것 같다. 그때 받은 고분 속의 감동을 이렇게 형상화하다니 ‘역시 강요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인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 두 점은 제주 풍광이 아니다. 그 중 〈만폭동Ⅱ〉는 1998년 여름 내금강을 여행하며 받은 느낌을 표출한 그림이다. 금강산을 다녀온 다음 해 개인전 때 내놓은 〈만폭동〉은 조선 후기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소품 〈만폭동도〉를 패러디한 것처럼, 너럭바위 위에 두 인물을 그려 넣었다. 붉은 티셔츠에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필자고, 물길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강요배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여행 직후 그린 1999년의 〈만폭동〉과 그 6년 뒤인 2005년의 〈만폭동Ⅱ〉는 강요배 화풍의 변화를 뚜렷이 읽게 해준다. 〈만폭동〉이 한여름 짙푸른 분위기로 갈색과 녹색의 선들이 세찼던 데 비해, 〈만폭동Ⅱ〉는 겨울이나 초봄 풍경이라 느껴질 정도로 희뿌옇다. 그가 “꿈에 두고 온 듯 아득하기만 하다”라고 했듯 〈만폭동Ⅱ〉에는 몽환적인 터치로 몽유금강을 담으려고 한 듯하다. 〈바닷가 아이들〉은 강요배로서는 별격의 그림으로, 발리를 여행했을 때의 일화를 담은 대작이다. 바닷가에서 강요배가 한 아이의 얼굴을 그리자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그 정황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캔버스 왼편 하단에는 그때 아이의 스케치를 아크릴로 덮어 마치 오브제처럼 붙여놓았다. 사진 속에 그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렇게 처리했다고 한다. 제주 민중항쟁사 연작을 그릴 무렵의 인물화 솜씨를 오랜만에 보여주는 그림이면서, 드물게 보는 자화상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이처럼 강요배는 제주의 바람과 땅과 하늘을 새로운 느낌과 생각으로 또 그렸다. 2000년 한림 귀덕의 들 언덕에 작업실을 지은 이후 6년째 작업해온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작업실을 완성한 직후 필자는 제주를 방문했다. 작업실 주변은 온통 수선화 밭으로 일구었고, 그때 강요배는 너무도 신나 있었다. 고향이면서도 “귀향해서 곧바로 정착하지 못하고 10년의 적응과정을 거쳐 이제야 제주인이 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여기서 그린 작품들은 먼저 2003년에 선보였고, 올해의 개인전은 그 두 번째인 셈이다. 2003년 ‘마음의 풍경’전 때의 그림들은 아직 갈색조의 풍경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푸른 색조의 바다 그림들이 관심을 끌었다. 제주 민중항쟁사 연작을 그리면서 토해냈던 암갈색 톤에서 한결 밝아져 있었다. 1994년 ‘제주의 자연’전에서는 “맵찬 칼바람에 살점 깎인 팽나무는 검은 뼈가지로 버틴다. 바람은 구름을 휩쓸어 황무지를 후려친다. 돌팍에 얽히고설킨 덩굴들은 가시발로 바람의 가슴팍을 긁고 찢으며 저항한다”9라고 했다. 그에 비해 2003년 개인전에는 “바람 속에는 수백 년 묵은 고목이 버티고 있다. 남쪽으로 쏠린 뼈가지를 하고, 마치 거대한 새처럼 바람을 타고 있다. 강한 바람은 인고의 생명을 안아 키운다. 바람과 나무는 서로를 멸하지 않고 서로를 만든다. 어쩌면 나무는 나무로 살 수 없고, 바람은 나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10라고 피력한 점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역력하다. 그런데 또 다시 커다란 변화가 인 것이다. 최근 3년 사이의 작업은 역사의 칼바람과 오버랩되었던 제주의 바람이 고요하고 잔잔하게 누그러졌다. 기 세찬 필치와 명암의 대비가 한층 약화되었고, 색조도 암갈색이나 회색조에서 밝은 미색이나 연분홍색으로 따뜻해졌다. 마치 강요배의 핑크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붓맛 또한 두텁고 거친 질료감을 살리기보다 일정한 리듬을 타면서 유연해졌다. 강요배는 이번 작품에 대하여 “강한 명암대비나 필세의 강도를 줄일수록 그림이 부드러워지는 한편, 오히려 대상의 표현 감정이 커진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라고 풀어낸다. 우선 제주의 아픈 역사의 무게와 그 흔적이 생생한 고향 섬 풍광을 그려야 한다는 앞선 시기의 강박관념을 어느 정도 덜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 자연의 대상이 주는 감명보다 자신의 속마음과 느낌에 충실하게 되고, 이를 선명히 표출하려 한 듯하다. 이는 〈알〉이나 〈북천〉 〈꽃비〉나 〈동백꽃잎〉 등 추상화 성향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찌 보면 강요배 자신이 제주 섬의 순정어린 살[肉]맛과 완연히 동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어쨌든 화가의 변신은 무죄다. 이런 변화가 강요배의 예술세계를 읽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앞으로 이 변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풀어내게 될까, 혹은 그렇지 못할까 하는 의구심도 스친다. 막상 강요배도 자신의 변화를 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은 신경이 쓰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긍정적이다. 첫째는 1998년 ‘동백꽃 지다’전을 마친 이후 방황하는 듯싶었는데, 그 슬럼프를 극복하지 않았나 여겨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최근의 작업량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요배는 회화의 기본인 묘사력이 탁월하다. 그는 대상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눈매와 첫 붓에서 마무리까지 쏟아 붓는 정열적인 예술혼의 소유자다. 그러기에 나는 언제나 강요배를 믿는다. 특히 타고난 감수성과 이지적인 조형의지를 잘 조화시켜내는 기량이 탁출卓出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