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인 파라다이스>는 포토샵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존 놀(John Knoll)이 1987년 남태평양 보라보라 해변에 앉아 있는 당시 여자친구(지금은 아내인) 제니퍼를 찍은 스냅 사진에 붙인 제목이다. 이 사진에서는 카메라를 등진 채 웃옷을 벗은 피사체가 만의 건너편에 자리한 푸른 산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이 스냅 사진은 역사상 최초로 ‘포토샵을 활용해 수정한’ 이미지로 여겨지게 되었다. 아날로그 사진 역시 리터칭을 비롯한 기술을 통해 광범위하게 조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토샵의 발명은 일반적으로 사진의 기록적 가치를 더는 신뢰할 수 없게 된 분기점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포토샵으로는 마우스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등 이미지를 자유롭게 구성하고 변형할 수 있게 되었다. 샤이비츠의 그림에서 제니퍼는 (그게 누구든지 간에) 매우 다른 종류의 낙원에 놓인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화면 속 화면으로서 놀의 사진을 참조하는 지점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의 윤곽과 함께 그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인물 같은 형상이 보인다. 제니퍼의 낙원은 이 밖에도 샤이비츠의 사적인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다양한 형태의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여러 흥미로운 출처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샤이비츠의 작업실에는 고대 예술부터 르네상스 시대, 동시대 광고 및 포토저널리즘에 이르는 여러 모티프를 추적하는 시각적 지도가 있다. 이는 형태의 알파벳이라 할 만한 것으로, 알파벳 자체의 형태, 즉 문자의 그래픽적 형상 또한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작업에 쓰이는 또 다른 귀중한 자료로 샤이비츠의 스케치북도 있다. 작은 8절 스케치북에는 기차 여행 중이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잠에서 깨어난 직후 부유하는 의식 상태에서 떠오르고 자라나는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담긴다. 아마도 이것은 샤이비츠가 자신의 그림에서 추구하는 부유하는 중간 상태와 매우 유사할 것이다. 비대상적이면서 여전히 부분적으로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중간 상태 말이다.
「연상적 임의성: 토마스 샤이비츠의 “제니퍼 인 파라다이스”에 대한 단상」 中 발췌 | 페터 리히터(미술 평론가,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