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는 디지털 세계를 작동케 하는 시그널, 그리고 소통을 방해하는 잉여물로 여겨지는 노이즈에서 세상의 의미를 유추한다. 작가는 컴퓨테이션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수집하고 확대하여 재구성함으로써, 환영받는 가치와 불편한 가치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상에 대한 철학적 전복을 시도한다. 현상적으로 드러난 노이즈는 부정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확대되었을 때, 그것은 리듬, 운율, 가지런함, 질서 등 미학적 규범이 제시하는 용어를 충족시킨다. 또, 에러(노이즈)가 발생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직 컴퓨테이션을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이즈야말로 휴머니즘의 잔존을 의미한다.
박종규는 우리 시대의 특성이 디지털 가상에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의 실체는 디지털 가상으로 빨려 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갖는 위력의 실체를 분석할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의 징후를 가리켜 ‘팬텀’이라고 정의한다. 팬텀은 단순히 유령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의 정체를 모른 채, 막연하게 이끌리는 삶, 순응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는 이러한 시기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비겁하다고 말하며, 오히려 두 개의 사이에서 중용(中庸)의 평형상태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더 나은 역사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이며, 과도기에 나타나는 홍역은 으레 치러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