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물결과
바람, 시간의 지나감과 같은 일들에 대하여서다. 가상을 사유하고
또 소유하는 문제의 모호함 속에서 손가락을 꼽아 보고, 다시 펼쳐 본다. 그리고 오늘의 애틋한 눈으로, 우리의 살갗을 보듬듯 회화의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멈추어 있는 회화를 마주하는 순간에 생동하는 것은 오직 마음이다. 감각은 언제나 논리 이전에 온다. 회화의 살갗에 머무르는 시간과
기억, 소리와 감촉의 총체적 만남이 빚어내는 낯섦으로부터다. 닿을
듯한 가상의 감각, 보일 듯한 환영의 실체를 한 장의 가벼운 평면 위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은 몸을 가진
존재의 연민일까. 회화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일이다. 그 투명한 힘은 신체라는 파동의 장 위에서만 감각된다.[1] 그리는
이의 몸에서 출발하여 보는 이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힘의 재질은 회화라는 특별한 매개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환된다. 여정의 가운데 재료가 있고, 도구가 있다. 화면과 장소의 규모가 관여하고 그날의 온도와 습도 또한 동참한다. 어제의
사건과 오늘의 정서, 내일의 상상이 은연중에 묻어난다.
「살갗들」 中 발췌 | 박미란(큐레이터, 학고재 기획실장)
[1]
Gill Deleuze,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trans. Daniel W.
Smith (London & New York: Contiuum, 2003), pp. 56-57;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 옮김 (서울: 민음사, 2008), pp. 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