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편의 세계 – 보이지 않는 것들이 주체가 되는 공간
강은영은 식물을 소재로 회화, 판화,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식물을
기르는 일과 작업 과정을 대조하고, 두 행위를 관통하는 요소를 고찰한다. ‘식물상점’을 운영하며 상업 활동을 병행한다. 식물을 재료로 쇼윈도를
연출하는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유리창이 많은 전시 공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쇼윈도의 형태를 떠올린 이유다. 쇼윈도를 구성함에 있어 우선적인
고려 사항은 외부로부터의 시선이다. 전면에 드러나는 모습 뒤에 감추어진 이면은 만드는 이와 보는 이 모두의 주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쇼윈도는 그 자체로서 한시적인 풍경이다. 재료로 사용한 식물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거나 변형된다. 강은영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쇼윈도의 내부 공간, 즉 무대 뒤편에 숨은 서사를 상상해보고자 시도한다. 평소 눈에 띄지 않는 부수적 요소들이 장면을 구성하는 주체가 된다. 강은영이 구현한 쇼윈도 뒤편의 세계는 낯선 생명들이 서식하는 상상적 장소다.
시들지 않는 이종(異種)의 식물과 그것을 기록하는 회화적 매체
강은영은 시간 및 생태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한다. 전시 공간은 살아 있는 식물과 인공 재료를 접목해 만든 유사식물로 채워진다. 생명을 다한 식물의 잔해와 식물을 본떠 만든 조화, 그것들을
엮어 제작한 오브제가 각기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서 다루어진다. 여러 재료가 얽히고설켜 완성된 결과물은 자생하는 식물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으며,
새로운 하나의 개체로서 거듭난다. 이들은 살아있는 식물과 닮은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또 다른 질감과 성질을 띤다.
강은영은 식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판화로 기록한다. 생명의 시간을 연장하거나 보존하려는 시도다. 이번 전시에서 식물 세밀화의 양식을 띤 판화 연작을 선보인다. 식물의 형태를 분절적으로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강은영은 플라스틱 조화를 분해해 살폈다. 꽃잎과 잎사귀, 줄기와 꽃받침이 각기 다른 질감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데 주목했다. 판화 작업을 할 때 다색 판을 나누어 제작하듯, 식물의 외양을 해체해 바라봄으로써 유기적 구조를 더욱 잘 이해하고자 했다. 시들지 않는 이종의 식물과 그것을 기록하려는 회화적 시도가 하나의 공간에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