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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빈: 플렉서블 

전가빈 

 

Q. 전시 제목을 《플렉서블》으로 정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동력이 상실된 지금, ‘플렉서블(유연한)’은 여러 방면으로 우리에게 강요되는 형용사 중 하나일 것이다. 다수의 매체들이 유연한 근무, 유연한 투자, 유연한 사고방식 등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유연해야만 한다고 연일 떠들썩하다. 하지만 무기력함이 만연한, 지금 시대의 유연함은 불편하기만 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유연함도 아닐뿐더러 유연하기 위해 소비하고 소모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파괴하고, 다시 시멘트로 구축하여 경제를 유연하게 회전시키는 현대의 유연함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

 

Q. 근작의 소재들은 어디에서 왔나.

 

인물 조각상은 인물을 혹은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로서 제작되고 있다. 인물은 이미지를 통해 실재하는 것으로 사유와 기억을 공유하는 형식을 띤다. 동시대의 사건의 기억을 소유하기 위해 미디어를 통해 무작위적으로 송출되는 정보들 속에서, 본인 스스로가 불편하게 느끼는 인물 혹은 인물들의 특정 행동을 통해 당대를 기록하려는 근거로 선정하고 있다.  

〈데몰리션〉의 경우, 과거 한때 유행하였던 외계인 콘셉트 데몰리션 노래방의 떨어져 나간 시멘트 외벽 간판을 모티브로 삼았다. 요즘 흔히 과거에 유행했던 것을 다시 꺼내어 그 향수를 느끼고 옛날로 돌아 간 듯한 감성적인 카페나 음식점을 선호하는 뉴트로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종종 과거가 미화되는 것은 사실이나, 작금에 불확실한 미래의 모습은 경제적인 초성장을 이룩할 시절 공동체가 함께 미래를 꿈꾸던 희망적인 사회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당시의 열광했던 이상은 모두 낡아 떨어진 시멘트 한 줌이 되었고, 이를 표현방식으로 현대인이 목도하는 욕망을 표현해보고자 하였다.

 

Q. 주로 건축에 사용하는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는 점이 흥미롭다.

 

현재 도시의 기본적인 건축 구조를 만드는 재료인 시멘트는 견고한 재료이긴 하지만 매끈하게 성형하기가 쉽지 않고, 시멘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금이 가거나 부분이 조각나거나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타일이나 페인트 혹은 다른 부재들로 감춰져 버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재료의 속성에 착안하여, 본인 작업의 주제와 잘 맞는 성향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외면에 약한 속성들도 자리 잡고 있다는 이면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본인 작업들은 모두 머리와 팔, 얼굴들이 손상되고 곳곳의 균열과 철근이 노출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현 사회상태가 임계치의 근방에서 겨우 지탱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경이로운 성장을 위해 토건사회를 지향했지만, 현재까지도 탈출을 위한 방법으로 토건을 대책으로 삼고 있다. 파괴를 통해 생산된 부산물(시멘트, 철근)은 어렵지 않게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으며, 부서진 시멘트 덩어리에 박힌 철근의 이미지는 오히려 시멘트를 더욱 시멘트처럼 보이게 한다. 유지보수를 한다면 더 오래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비용이 신축 이상으로 발생하고 안정성에도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기 때문에 적당히 이용하고 부수는 것이 이득이며, 파괴와 재조립의 무감각한 현상의 반복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작품에 적용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