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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가장 희미한 해 

김은정 

 

Q. 전시 제목을 《가장 희미한 해》로 정했다.

 

《가장 희미한 해》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윤원화, 워크룸, 2016)의 소제목 중 하나이다. ‘지나간 시간의 기억은 일종의 꿈 또는 유령 같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후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태양계의 중심, 어디서나 빛나는 것.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각각의 존재가 갖는 유일무이한 가치와 동시에 그것의 연약함에 대해.

 

Q. 근작의 소재들은 어디에서 왔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가장 크다. 날씨, 자주 가는 공원의 풍경, 만나는 사람, 동물과 식물에게 받은 영향이 작업으로 생산된다. 또한 말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그림을 그리고 문학을 읽으며 충족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와 성장 소설을 좋아한다. 시를 볼 때 단어들이 주는 생각의 파장이나, 소설 속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해 응원하게 되는 순간들이 흥미롭다. 〈녹지 않는 사람〉(2021)은 영화와 소설 속 ‘여성의 서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엄마, 언니, 동생, 딸 등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을 떠올리며 그렸다. 먹 드로잉들은 공원에서 수집한 ‘어린이 동상’들의 형상을 재구성한 것이다. 어느 날 오랫동안 거기 있던 형상이 자꾸만 기이하게 느껴졌다. 불편함을 지우거나 극대화하는 데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날씨는 아주 먼 과거 혹은 미래에도 대기권이 있는 한 존재할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공기는 순환한다. 그리고 거기에 내던져진 사람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의 영향을 받는다. 날씨는 어떤 공통의 경험들을 말한다. 보편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들을 날씨에 빗대어 본다. 구름(연기)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나 상황을 의미한다. 기체인 동시에 고체의 상태로, 시시때때로 모양이 바뀌고 아주 작은 틈을 넘나들 수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구름(연기)은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져 모호하고 제어할 수 없다.

 

Q.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하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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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것은, 마치 다른 언어를 익히는 것과 같은 묘한 긴장감이 있다. 같은 제스처에도 도구가 달라지는 것만으로 굉장히 다르다. 각각의 매체마다 한계와 장점을 익히고 그것을 조화롭게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매체가 내 작업에 적합한지 찾아보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입학한 대학에서의 전공은 서양화였지만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동양화 기초였다. 이후 홍익대학교에 입학해 판화과를 전공하고 복수 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다 보니 통일성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있었다. 흑백 드로잉 작업은 같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담보할 수 있다. 또 날 것의 이미지를 채집하기에 적합한 기법이다. 주로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리는데 이 방식으로 그리면 모든 획의 흔적이 남아있어 생각의 흐름을 모두 볼 수 있다. 색을 사용하는 작업은 더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