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갤러리에서 ‘픽처 플레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오랜만에 구미 대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물론 양념처럼 들어간 일본 화가 나라 요시토모는 구미 화가라 할 수 없지만,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쟁쟁한 유럽과 미국의 대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채로운 것은, 우리나라 갤러리 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20세기 초의 거장 키르히너의 작품도 선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구성이 다채롭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형형색색의 풍경을 둘러본다면 매우 즐겁고 행복한 그림 산책이 될 것이다.
사실 혹은 진실은 대체로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그게 진정한 리얼리티다. 《픽처 플레인》전에 출품된 우리 시대 거장들 작품에서 그 리얼리티를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경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미술로의 행복한 그림 산책」 中 발췌
이주헌 | 미술평론가
태초의 그림은 땅에 그려졌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그은 선이 형상을 이루고, 의미의 언저리를 어렴풋이 맴돌다 이내 지워졌을 것이다. 그림이란 그리는 자가 인지하는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인 법. 직립하여 걷기 시작한 인간은 자세와 시선의 변화에 따라 동굴의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에서, 세상의 모습은 인간의 직립 자세와 결부하여 나타난다. 형상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머리를 위로, 발을 아래로 향하는 수직의 화면 위에 놓인다.[1] 올바른 방향의 수직 화면은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존속되었다. 작업 화면의 전환은 회화의 주제가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행하며 일어났다. 미술이 지향하는 목적과 역할의 변화에 따라 화면을 대하는 관념적 시각도 달라진 것이다. 전시 《픽처 플레인 Picture Plane》은 작업 화면의 위치, 즉 예술가의 관점 변화를 단서로 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하는 시도다. 수잔 앤 로렌스 반 하겐 컬렉션을 통해 선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픽처 플레인: 수직, 수평의 화면과 움직이는 달」 中 발췌
박미란 | 학고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