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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 

변월룡 

 

학고재는 2019년 4월 17일(수)부터 5월 19일(일)까지 변월룡(1916~1990, 러시아 연해주) 개인전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을 연다. 변월룡은 한국전쟁 이후 활동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다. 한국인으로서 뚜렷한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닌 인물로, 특히 북한 미술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공백을 채울 주요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충분한 조명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귀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배척당했고 남한에서는 최근까지 변월룡의 존재가 알려진 바 없었기 때문이다. 변월룡은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과 제주도립미술관이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1을 계기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당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20세기 한국 현대미술사의 사각지대에 이처럼 훌륭한 재외 동포 화가가 있었다는 것은 정녕 기쁨”이라며 격찬했고, 고은 시인이 “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북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북한 미술 연구가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맥락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도 있다. 정치, 사회적 한계를 넘어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가를 찾아내고 연구하는 일은 한국 미술의 국제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전시는 상업 화랑에서 개최하는 변월룡의 첫 개인전이다. 변월룡의 작품세계를 국내외 미술 시장에 폭넓게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회화, 판화, 데생 등 189 점의 작품을 학고재 전관에서 선보인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지난 25년간 변월룡 연구에 전념해온 문영대 미술평론가가 전시 기획을 총괄하고 서문을 쓴다. 문영대 미술평론가는 변월룡이 “통일 한국 미술사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할 작가”라고 강조해왔다.

변월룡은 1916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스베르들로프스크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러시아 예술아카데미(현 레핀·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에 진학하여 1947년도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1951년, 동 대학원에서 소련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 건축 예술부 데생과 조교수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교수 활동을 시작했다. 1953년에 부교수로 승진하면서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파견되었다. 변월룡은 평양미술대학의 고문 겸 학장으로 재직하며 교육 체계를 바로잡고 학생과 교수들을 지도 및 육성했다. 이듬해 러시아로 돌아가 복직한 이후, 고국으로의 복귀를 평생 희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1977년도에 레핀·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 정교수로 승진, 1985년에 35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퇴직했다. 1990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미국 플로리다 히벨 미술관의 전시 《골든 브리지 Golden Bridge》(1990)에 작품을 출품했다. 서구에 최초로 작품을 선보인 기록이다. 지난 2016년, 변월룡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현대미술관(서울)과 제주도립미술관(제주)에서 연이어 회고전을 개최했다. 변월룡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전시로 미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립러시아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 [변월룡 1916-199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6.3.3.~5.8.
고국의 품에 안긴 거장, 변월룡, 제주도립미술관, 2016.8.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