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흙, 물, 빛, 돌, 풀, 네온… 심문섭이 1970년대 초 이후의 작업에 사용해온 재료들을 보면 그가 완전히 ‘아르테 포베라’ 예술가 중의 한 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지리학적인 이유로도 그렇지만, 그의 예술적 행보가 이 운동의 주역들과 다른 토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문섭은 토리노는 물론 이탈리아의 어떤 예술운동에도 참여한 바 없다. 그렇지만 아르테 포베라의 구성원이었던 주세페 페노네, 마리오 메르츠, 조반니 안젤모, 피에르 파올로 칼졸라리 등과 같이 심문섭도 재료의 선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고, 그 자신이 계속해서 사용해왔던 재료들을 지칭하기 위한 형용사로서 ‘가난한’ 혹은 ‘절제된’ 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또한 항상 자신의 작업들이 놓이게 될 공간에 대해 언제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심문섭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더불어 자랐고, 자연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당연히 그는 간단하고 기초적인 재료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연적 질료에 이르기 위해 재료들의 본성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가 근원 즉, 원래적 의미에서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면을 좋아하는 것도 무엇보다 덩어리로 잘려진 나무의 날것 그대로의 속성이나 물의 순수성에서 나오는 밀도와 힘을 위해서이다. 더 나아가 그 같은 요소들의 특유한 성질과 내재적인 힘을 위해서이다. 심문섭이 추구하는 것은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재료들이 병치되면서 탄생하는 만남이나 대화이다. 그의 작업은 어떤 대립적인 것들, 이를테면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직선과 곡선, 수직선과 수평선, 자연(돌)과 산업(철판) 등이 접촉해서 만들어지는 긴장과 균형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작업이 드러나는 방식에서 이 모순의 놀이와 조화에 대한 탐구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심문섭은 조각의 조형적인 면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것들까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각 작품의 형태, 그 존재 그리고 한 장소에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위치들은 작품이 이루어지고 있는 컨텍스트를 드러내기 위해 숙고된 것이며, 이로써 우리는 작품 주변의 공간과 작품이 그 주위 환경과 대화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내면의 공간에서 진실한 것은 외면의 공간에서 훨씬 더 진실하다. 2007년 봄 파리의 팔레 루얄 정원에서 열린 심문섭의 전시는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증명해 보여주었다. ‘섬을 향하여’ 라는 제목의 작품은 바다와 거의 무관한 이 정원에서 관객들은 마치 배를 타고 항해하는 여정에 초대되어 나무들 사이로 놓인 가로수 길을 따라가다가 잔디와 분수 위에 설치된 십여 개의 작품들을 발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꾸며졌다. 어떤 작품들은 그물이나 날아다니는 배처럼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나뭇가지 속에 혹은 아주 미세한 바람에도 풀밭 쪽으로 기울어지도록 고안된 투명한 원통형 튜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작품들은 반사를 창조하거나 분수처럼 역할하도록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 다른 것들은 나무와 철로 만들어져 단단하게 땅에 고정되어 줄을 잘 맞추어 세워져 있었다. 공기, 물, 흙 등의 주요 요소들이 주의를 끌었고, 관객들은 자신들이 초대된 이 입문적이고 시적인 여행을 완수하기 위해 올려다보거나, 구부리거나 하면서 시점들을 발견해야 했고, 그러는 동안 이 정원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이것이 심문섭이 주변의 자연(인공적이든 아니든)을 드러내고, 작품들을 그것이 섞이고 있는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이게 하는, 그래서 자신의 작품들을 어떤 컨텍스트 안에 꼭 들어맞게 하는 방식의 완벽한 예이다. 원래 원칙은 작품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치와 환경과 함께 작품을 구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종종 우발적이며 순간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이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 자연의 흐름(비, 태양, 바람)과도 함께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진정한 삶의 기호이자 생의 원리로서의 시간과 공간을 품고 있다. 그것을 외치든, 속삭이든 심문섭의 작품들은 모두 역동적인 개념을 지향한다. 인간의 에너지, 자연의 에너지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유지하는 존재적 관계의 에너지. 그가 움직임을 꾸준히 탐색하고, 흐르는 물을 자주 환기시키고, 리듬과 반복과 덧없는 것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문섭은 자연을 고정시켜 환기하는 데 멈춰 있기보다는 삶을 현실로 숨 쉬게 하는 힘, 모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에너지 장들의 힘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달리 얘기하자면 각각의 작품이 삶의 깨지기 쉬운 균형의 은유이거나 그 예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2008 심문섭展 서문 /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예 (미술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