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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철주 개인전 

석철주 

 

이번 전시는 이상과 현실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자연의 모습을 전시한다. 석철주는 두 곳으로 분리된 전시 공간을 활용하여 전시장 본관은 이상의 풍경으로 신관은 현실의 풍경으로 연출했다. 두 개의 공간에서 만나는 이상과 현실의 풍경 본관에 전시한 <신몽유도원도> 연작은 석철주 특유의 스미고 번지는 기법으로 그린 유장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거대한 산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내뿜는 산수의 묘취는 단연 독특하다. <신몽유도원도>는 전통산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기법에 있어 전통산수의 형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 전통산수의 경우 선과 선, 면과 면이 겹쳐지고 더해지면서 산과 들을 자아낸다. 하지만 석철주의 그림은 채우는 기법이 아닌 지우는 기법을 통해서 전통산수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산을 표현하되 산을 그리지 않고 오히려 산의 형상을 허물어 아득한 공간을 확보한다. 이렇게 표현한 산수는 보는 이와 일정한 거리를 지니고 있다. 마치 여백과도 같이 존재하는 이러한 거리감은 바로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고 또 융합하는 곳이기도 하다. 석철주는 산수라는 오래된 형식과 도원(桃園)이라는 상징성 강한 공간을 몽유(夢遊)함으로써 아득한 전설같이 잊혀져가는 자연의 이상적 경계를 펼쳐 보인다. 신관에 전시한 <자연의 기억> 연작은 웅장한 산수를 그린 <신몽유도원도>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 아무렇게나 핀 들풀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다양한 색깔과 모습으로 표현한 들풀들을 통해 현실 속 풍경을 다채롭게 형상화한다. 마치 크레파스 긁어내기 그림을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그린 이 작품들에는 무수한 행위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이런 흔적들은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이미지를 만들며 캔버스 가득히 흐드러진 풀들을 재현한다. 형형색색으로 그린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넓게 펼쳐진 들판에 서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석철주는 너무나 흔해서 존재감조차 없는 잡초들에 초상을 통해 하찮게 생각했던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대형화폭에 옮겨진 한국의 고전 산수와 들풀 등 자연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작가는 이제 다시, 오래된 고전을 마주한다. <신몽유도원도> 역시 우리 미술의 고전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작가의 언어로 재해석한 것인데, 이런 그의 작업방식이 이번 개인전에서는 다른 고전 작품들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석철주가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은 정선의 <박연폭포>,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전기의 <매화초옥도>, 강희언의 <인왕산도>등 한국의 고전들을 확대하거나 약간의 변형을 통해 공간의 성격을 변환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본래 화첩 정도 크기이거나 족자 형식의 작은 그림들을 수십 배 확대해 대형 화면에 수용함으로써 낯익은 고전의 모습을 색다르게 보여준다. 많은 작가들이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지만 이처럼 산수화를 회화로 번안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다양한 고전 장르 가운데에서도 특히 정신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산수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힘을 화폭에 옮기는 것은 그만큼의 용기와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같은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형상을 모사하여 시각적 재미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정신을 재현하기 위함이다. 그가 재해석한 고전 작품들은 선비들의 이상향을 비롯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림속의 선비가 매화 그득한 산중턱에 집을 짓고 속세와의 인연을 멀리하며 자신을 수행했던 것처럼 석철주는 누구나 다 유행을 따라가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기로 다짐한 것이다. 소위 인기가 없는 한국화가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지금, 그는 한국의 고전들을 대면하여 한국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그 대답을 구한다. 그의 이런 다짐은 작품의 색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의 산수는 강렬한 분홍색과 청자의 푸른색으로 표현된다. 분홍색은 몽유도원도의 도(桃:복숭아 도)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석철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푸른색은 청자를 비롯하여 우리 선조들이 즐겨 썼던 색으로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옛것을 통해 내일을 모색 - 溫故知新의 정신 석철주가 고전을 대면하고 그것을 재해석하는 이유는 선인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결국 석철주는 이 전시를 통해 앞으로 한국화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자연, 우리 전통, 우리 것의 가치를 되새기며 그 마음가짐으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자고 말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변화가 일상화 되었을 뿐 아니라 물질의 풍요로움이 삶의 척도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우리 자연과 전통의 소박하고 전원적이며 탈속한 가치를 통해 오늘을 조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