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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침 

강요배 

 

제주에 대한 살뜰한 애정을 자연과 풍경에 녹여 그려온 ‘제주의 화가’ 강요배(1952~ )에게 제주는 삶의 모태이자, 작업의 일관된 화두였습니다. 그동안 그는 이처럼 제주 섬땅을 무더위와 비바람, 달과 햇빛, 나무와 바다를 풍경이자 역사이고, 삶이자 예술이며, 찰나이자 영겁이고, 존재이자 초월로 표현해왔습니다. 그럼에도 강요배 작업은 ‘인간의 감정이 서린 풍광’, ‘마음으로 찾아낸 제주의 참모습’, ‘시간의 심연을 품은 마음을 통과해서 나온 자연’으로 평가되면서 하나의 정형화된 풍경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움으로 보편적인 공감을 형성해왔습니다. 스밈에서 ‘스침’으로 강요배 작업은 물감이라는 재료와 붓질이라는 행위가 다루는 사물과 만나 조성하는 긴장감입니다. 이러한 긴장감은 까슬까슬한 필치나 휘리릭 나르는 붓질에 겨우 묻은 듯 만 듯한 물감 자국 그리고 흙손으로 비벼 눌러 뭉갠 듯 윤곽이 모호한 색면 덩어리 등과 같은 강요배 특유의 재질감을 통해 배가됩니다. 이러한 재질감과 더불어 속도가 느껴지는 빠른 필치는 강요배 작업에 운동감을 부여해 왔습니다. 그의 작업에서 손에 잡힐 듯한 바람의 결과 같은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연에서의 바람이 그러하듯 강요배 작업에서도 바람은 천변만화의 양상을 보입니다. 하늬바람에서 칼바람으로 칼바람에서 다시 샛바람으로 변화하는 움직임은 물감이 묻은 평면에 소리를 만들고, 결을 생성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스침의 소리-돌멩이, 마른 풀, 신문지 최근 강요배는 스침, 특히 그 순간의 ‘소리’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새로운 기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작업 내내 그는 화면에서 나는 소리에서 즐거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기존의 것들처럼 단순히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을 붓에 묻혀 그린 것이 아닙니다. 붓을 대신한 다양한 재료들이 등장합니다. 돌멩이, 솔가지(풍송), 칡넝쿨, 혹은 구긴 반들반들한 종이나 구긴 신문지 뭉치를 붓 삼아 그것에 물감을 묻혀 그린 것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그는 이러한 재료들이 화면을 이리저리, 요리조리 스치는 소리에 빨려 들어가면서 ‘사물마다 도구를 달리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전시 강요배의 《스침》이 과학자의 눈을 통해 규정되는 자연이 아니라 화가가 마음으로 제안하는 자연과 스치듯 만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