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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展 

안규철 

 

작가의 꿈, 그 장인의 철학 中 작품의 인상을 통해 잠시 그의 시선을 더듬어 보자. 사랑이라는 단어가 양각돼 있는 망치, 진짜 물을 향해 마른 헤엄을 치는 테이블 위의 그림 물고기, 손잡이가 다섯 개 달린 예술이라는 이름의 문, 접을 수 있는 두 개의 나무판 위에 새겨진 두 개의 손등(판은 접혀질 수 있지만 손은 영원히 마주할 수 없다), 기억이라는 글자가 촘촘한 구멍으로 투각된 안경, 구두 굽을 대신해 다른 구두의 코를 밟고 서 있는 세 켤레의 구두... 우리 삶의 모순, 그 모순의 가벼움이 그의 작품 속에서는 무척이나 무겁게 담겨 있다. 거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시대 언어의 몰락 또는 붕괴를 체험한다. 합리성을 추구한 사회가 남긴 비합리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안규철은 자신의 작품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제작함으로써 제외되고 버려진 부분을 자연스레 담고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말한다. 가벼움을 표현함으로써 무거움을 담게 된, 혹은 그 반대인, 그런 작품인 것이다. 물론 이런 엄밀한 대칭적 비교가 가능한 데는 옷이든 구두든 망치든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안규철이 끈끈한 장인정신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의 장인정신은 한마디로 그의 예술적 사고가 육신을 입는 데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엄밀한 정신체계이자 비교대상을 찾기 어려운 철저한 의지력 그 자체이다. 이 장인적인 정신과 그에 기반한 제작화정에서 그는 기왕의 관념을 뒤흔드는 전략을 또 한 번 펼쳐 보인다. 대량생산 시대인 요즘 누구도 자신이 스스로 모든 필요한 소비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규철은 바느질에서부터 대패질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사물을 제작한다. 그것들은 트렌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형적인 기본 생필품들이고 작가는 그래서 수많은 생산노동자처럼 익명성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작품은 오리지낼리티를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표방하고 있는 사물은 오리지낼리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중세의 수공업자가 돼 현대의 문제를 질타한다. 언어와 사물 사이의 간극, 사물과 사물 사이의 간극을 진한 땀이 밴 수공품의 모습으로 철저히 물질화시켜 구체적이고 명효한 조형언어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하나의 개념을 위해 엄청난 땀과 가공의 시간, 그리고 물질을 동원하는 것이다. 창조의 생생함은 성경에서 신이 성경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나의 개념이 의지를 낳고 그 의지가 사물을 낳았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하지만 신이 아무런 노동 없이 제작한 것을 안규철은 숱한 시간과 땀을 바쳐 만든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다. 이 점에서 안규철의 작품은 휴머니즘의 가치를 보다 선명히 보여주는 동시에 휴머니즘에 기반한 일종의 도덕주의자의 모습 또한 뚜렷이 보여준다(이 부분은 종교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 휴머니즘이 근검・절약 등 도덕적 가치를 높이 치켜세웠던 부분을 연상시킨다). 결국 그의 작품은 단순히 인식의 지평을 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실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모든 사물을 꼼꼼히 수공으로 제작하는 그의 모습이 그 도덕의 엄격성을 잘 전해준다. 그러니까 그의 예술은 본질적으로 인식과 실천의 통합을 꾀하는, 실천하는 철학자의 예술인 것이다. 이렇게 인식에서 실천가지, 주체에서 조형화 과정가지 일관되게 흐르는 그의 의식이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때로 해독하기 어려운 난수표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점, 나아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공감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의 작품이 전하는 이 시대의 모순율을 선명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느낌과 감수성의 공유지 논리의 공유가 아니다. 그가 굳이 철학자가 되지 않고 ‘철학하는 예술가’가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로 그 점에 기대 그가 이 시대 우리 문화의 전개과정에서 담당해야 할 몫이 17세기 프랑스 푸생의 그것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을 기대해본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를 90도 직각이 하나도 없는 사회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직각은 딱 하나입니다. 우리도 한번은 ‘직각은 직각으로’ 만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렵다고 꿈이나 신화로 도망가면 안 되지요. 직각을 한번 만들어 보면 그걸 위해 떨궈내버렸던 것, 그런 것들을 객관화해 바라볼 수 있고 그것들의 모습을 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