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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득

 

먹의 자취를 힘차게 하얀 여백 위에 올리고 있는 작가 김호득은 197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여 1985년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먹물이 튀고 베인 작업실에서 묵()의 어둠과 깊음을 향해 꾸준히 탐구하며, 먹물과 함께 그의 생애를 보내고 있다. 검을 흑()과 흙 토()로 이루어진 상형문자 ()’, 즉 연소하여 타고 남은 그을음 속에서 작가는 우주, 생명, 기운생동을 발견하며 그의 삶을 기록해왔다.

 

김호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먹으로 그어내는 일필휘지로 다양한 연작들을 만들어 왔다. 동양화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전통재료의 표출적인 행위는 진수를 찾기 위한 작가 고유의 조형언어이며, 재료에서도 구애받지 않은 자신만의 전달수단을 창조하고 있다. 종이를 구겨서 먹을 찍어내거나, 한지에 먹을 적시고 주물러 빚어놓기도 하며, 붓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제작하는 작가는 먹의 놀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갱지, 한지와 같은 전통재료에 한정되지 않고 질기고 성긴 광목천, 캔버스천 등을 이용하여 먹이 스미는 공간을 다양하게 연출하며 작가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붓을 놀리는 힘을 통해 변화하는 먹의 농담은 배경이 되는 조직에 스며듦과 동시에 제각기 다르게 응고되어 먹과 모필이 이뤄낸 우주를 심화시킨다. 초기 김호득이 전통산수화를 화폭에 담아 폭포, 계곡, 바위 그리고 흐르는 물을 주로 그렸다면 지금은 수많은 점 찍기와 선 그리기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또한, 작가는 종이 죽을 꽉 쥐어짜 내거나, 수조에 묵을 풀어헤치고 한지 수십 장을 걸어두는 등의 설치작업도 병행하며 다양한 행위실험 속에서 물질의 순수한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통적 수묵의 필치를 과감한 형상으로 풀어나가는 김호득은 자연을 모티프 삼아 생명그 자체를 탐구하고 먹의 농담으로 커다란 기()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포스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