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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1932-2006)21세기 현대미술의 대표로 알려진 거장이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일본과 독일에서 음악, 철학, 미술사를 공부하고 독일과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가 소통하는 예술을 만들어냈고, 기술과 미디어를 통해 유토피아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해냈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서부도시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생애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전을 연다. 그는 TV 모니터를 캔버스 삼아 소리를 이미지로 바꾸거나 송신기로 전자 파동을 화면에 그려내는 움직이는 회화를 선보인다. 비록 그 당시에는 이해받지 못했지만 그는 그 전시회를 통해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1964년 뉴욕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샬롯 무어만을 만나 음악과 미술, 기술을 통합한 퍼포먼스로 뉴욕 예술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7년 퍼포먼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부적절한 노출’이란 이유로 인해 무어만과 함께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이기면서, ‘억압되었던 예술의 표현을 풀어주었다’는 평을 들으며, 퍼포먼스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1973년 뉴욕주 시라큐스 에버슨 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연 이후, 1984년 첫 위성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일시에 25백만 세계인을 하나로 연결하는데 성공했고, 1986년과 1988년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위성방송 프로젝트를 실현함으써 본인이 주장하던 기술과 미디어를 통한 소통예술의 중요성을 증명하였다.


백남준은 TV와 비디오, 미디어와 테크놀리지를 조각, 페인팅, 드로잉, 퍼포먼스, 설치 등 미술의 다양한 카테고리에 접목해 예술의 영역을 대폭 확장했다. 1985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첫 번째로 참여하고, 1993년에 같은 비엔날레에서 영예로운 황금사자상을 획득하였으며, 1990년에 이르러는 1,003대의 모니터를 사용한 <다다익선>이나, 47채널 비디오를 313개의 모니터에 실어 보여주는 <일렉트로닉 수퍼 하이웨이>, 현시대의 웹 문화를 예견한 ‘W3’ 같은 설치 작업을 만들었고, 2000년 구겐하임 회고전에서 와 같은 레이저 작업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명실공히 국제적으로 가장 혁신적이고 첨단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2006년 타계한 이후에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2013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미술관, 2014년 뉴욕의 록펠라 아시아 소사이어티,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과 같은 유명한 미술관에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