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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류밍

 

1991년 후베이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마류밍은 대학 선배인 왕광이의 조언에 따라 북경으로 이주 후 1993년 창조적인 꿈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 모여 살았던 동촌(베이징 이스트 빌리지)으로 들어갔다. 당시 젊은 작가들의 예술가촌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북경의 원명원과 더불어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동촌은 마류밍과 장환을 중심으로 중국 아방가르드 실험미술 공동체가 설립되며 이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사상과 기호가 존중되지 못하던 중국 사회에 퍼포먼스 예술이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특히 마류밍은 퍼포먼스 속 또 다른 자아 ·마류밍을 창조하여 남성과 여성의 성적 모호성의 문제, 외양과 실재의 문제, 정체성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아가 중국 사회의 강박적인 문화 저변에 시사점을 던지는 파격적인 작품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퍼포먼스는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2003, 일본), 텐스타 쿤스트홀(2002, 스웨덴), 7회 이스탄불비엔날레(2001, 터키), 2회 국제 행위예술제(2001, 런던), JIPAF2000(2000, 자카르타), 광주비엔날레(2000, 한국), NRW 2000(2000, 독일의 뒤셀도르프, 뮌스터, 에센), 퍼포먼스인덱스페스티발(1999, 스위스의 제네바, 바젤),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1999, 미국). NIPAF(1999, 일본의 나고야, 도쿄, 나가노). PS1 현대미술센터(1998, 뉴욕), 세타가야 미술관(1997, 도쿄), 퍼포먼스 아시아티크(1997, 캐나다 퀘벡시티) 등 국제 미술계를 종횡무진하며 펼쳐졌으며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예술감독: 하랄트 제만 Harald Szeemann)에 초청되며 국제적 명성을 확인하였다.


2000년 이후 작가는 퍼포먼스에서 그의 전공인 회화로 돌아왔다. 어른의 얼굴이지만 아이의 몸을 가져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미지를 빗대어 중국 미술의 정체성을 비판하는 <아이>시리즈,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의 기록인 <신체>, 와 퍼포먼스 영상의 찰나를 회화로 옮기는 <10분의 1>시리즈 등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특히, 성긴 캔버스의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누화법(漏画法)이라는 특유한 화법은 표면에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투과된 빛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을 이룬다.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 아기와 어른, 작가와 관객, 주체와 타자 등 각 대상의 관계를 역전시키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온 마류밍의 작품은 중국 현대미술의 성장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