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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신학철은 1943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1968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민주화 투쟁 시기에 이 땅의 민중과 호흡을 같이 하며 민중의 애환과 희망그리고 민중적 역사 전망의 숨결을 표현한 한국의 대표적 민중미술 화가다

신학철의 예술적 경력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모더니스트로부터 출발하여 나름대로 내공을 쌓는 과정이 있었고 그 후 민중미술 화가로 변신했다는 점이다그는 유희영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스승으로 만나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했다서양화과에 입학했을 당시 담임이 ‘단색화’ 거장 박서보였다대학 입학 후 처음에는 구상 그림을 그리다가 3학년 때 팝아트를 발견했고 이후 여러 새로운 서양 현대미술의 형식에 이끌려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1970년부터 1975년까지 A.G.(아방가르드협회)에서 활동했으나 점차 한국 현대주의 미술에 회의감을 느꼈고우연히 접한 사진집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1978)을 본 후 충격을 받았다그 후 1980년대부터 기존의 오브제 작업에서 탈피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운 조형미로 추구하기 시작했다이는 신학철이 민중미술 진영으로 합류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1982년 첫 개인전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80년대에는 <한국근대사시리즈, 90년대에는 <한국현대사시리즈 40여 점을 연작으로 발표하여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다일제시대와 독립운동해방을 거쳐 동족산장의 전쟁과 분단전후의 굴절된 정치사와 사회사외래문화의 범람 등으로 이어지는 민중의 수난사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형상화하여 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1998년에는 한국근현대사 연작의 중간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현대사 – 갑순이와 갑돌이>를 시작했다

신학철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억들을 화면에 성실하게 기록한 화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그는 우리의 민족사를 단지 '수난'이라는 부정적 시각에서만이 아니라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과 민족문화의 힘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 미래의 통일된 세계 내지는 바람직한 민족공동체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이것은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가 획득한 긍정적 전망이자 중요한 성과이다.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제1회 미술기자상1회 민족미술상16회 금호미술상을 수상했다『월간 미술』에서 기획한 '1980년대 한국의 대표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에서 평론가들에게 최다득표를 얻기도 했다그와 그 작품의 영향력을 살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989년에 ‘모내기에서 김일성의 만경대 생가를 묘사했다는 혐의로 구속재판을 받았다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유죄 취소판결 등을 겪은바 있다신학철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 공립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등 주요미술관에 다수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