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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열: 암시적 기호학 

오세열 

 

오세열의 최근 그림에는 일련의 암시적이고 단련된 기호들이 화면을 구성하는 주요 맥락으로 등장한다. 그 기호들은 아라비아 숫자를 비롯하여 낙서를 연상시키는 느슨한 타입의 은유적 메시지들, 그리고 익명적이고 자전적이며 극중의 피에로를 연상시키는 인물 시리즈들로 나타난다. 이러한 소재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탈 유채화적 평면의 질감과 만나면서 오세열 그림만의 독자성을 확보한다.

 
그의 평면 작업에 등장하는 이러한 소재와 구성은 한편으로는 예술가의 자의적이고도 우연한 선택을 통하여 이룩된 상상의 우주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연을 예측한 고도의 회화적 법칙이 계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령 플라스틱 수저, 장난감, 단추, 고추, 물고기, 새, 나뭇잎 등은 오세열 회화의 중심적 요소로 등장하며, 이러한 소재를 보호하고 그 타당성을 응원하는 주변의 시츄에이션들은 고도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연출하면서 함께 어울린다. 원래 시각기호와 그것이 활자화 된 문학은 정신적으로 혈연 관계에 있는 것이지만 시각적 기호가 훨씬 웅변적 요소라는 사실을 오세열의 그림은 증명하는 듯하다.
 
이러한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것에의 시각적 탐구는 지금까지 다양한 이미지의 변주를 통하여 지치도록 경험한 것이지만 오세열의 회화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흔한 소재를 지극히 절제하는 태도와 평면을 해석하는 시각적 의외성 때문이다. 기존의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예술적 힘이나 태도는 비단 아이디어로만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그 타당성에 대하여 봉사하도록 설정하는 회화적 환경의 대비가 설명해주어야 한다.
 
오세열은 물감을 덧칠하여 생산된 캔버스의 두터운 층들을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거나 특정 부분을 의도적으로 훼손함으로써 표현된 내용과 질감을 있는 그대로 노출한다. 때로는 캔버스뿐만 아니라 나무 패널을 이용한 평면 작업을 통하여 이러한 질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물론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평면에 표현된 소재들이 고도의 상징성을 갖는 매체로 활용될 때는 훨씬 자극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화면을 긁어내는 기법으로 표현된 소재들은 흡사 갈필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이며, 여기에 표현된 각종 소재들, 이를테면 물고기나 나무, 꽃, 창문 등의 소재는 19세기 프랑스의 상징시처럼 메타포를 선사한다. 이것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평면을 가득 메울 소재들을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주변에서 부지기수로 놓쳐버린 중요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부호들을 캔버스에 던져놓음으로 해서 상상력에 대한 갈증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오세열의 그림에서 시적 언어와 회화적 상징성이 병합된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오세열이 그의 그림에 사용하는 배경은 대체적으로 단색조이다. 회색, 검정, 미색 등 좀처럼 감성적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바탕색을 통하여 평면을 만들어놓고 그리는 자와 보는 자가 모두 집중할 만한 소재들을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함으로써 회화성은 물론 회화 언어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모호한 잿빛을 통하여 전체적인 애매성과 내부적 세밀함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선사하지만, 충실한 표현과 침묵의 속살 사이에는 간극이 없다는 사실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표현의 경제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표현이 최소화될수록 캔버스의 평면은 침묵의 열기로 들뜨게 되며, 반대로 표현이 극대화되거나 노출될수록 평면은 인내의 갈망에 시달리게 되는 경험들을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1에서 출발하여 10까지 연속성을 갖거나 8에서 출발하여 역순으로 작아지는 등 숫자가 예시하는 연상 작용을 통하여 보는 자들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숫자의 배열은 수가 갖는 치밀한 의미를 강조하거나 부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수라는 정밀한 수학적 기호들을 화면에 배치하므로 예기치 않는 의미의 반전이나 상상력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의 배열들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시각적 요소로 활용됨으로써 숫자만큼이나 무수한 인연의 실마리를 간직한 기호로 사용된다. 우주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수의 집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삶은 수의 노예가 되거나 디지털 실타래의 직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구조가 되어있음을 상대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오세열이 그 숫자 한 가운데에 배치한 패랭이꽃은 매우 시적인 감수성을 배태하게 하는 백미로 남는다.

  

오세열의 암시적 기호학  l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